실연남 손로문씨 온라인 사랑방 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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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0면

그녀는 하루 종일 서서 일했습니다.

저녁이면 다리가 퉁퉁 부어 한숨을 쉬었습니다.

나는 그녀의 다리를 풀어주며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며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됐습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저와 헤어지자고 말했을 때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사랑을 했다. 그들이 만난 지 1천2백81일 만에 그녀가 그를 떠났다.

남겨진 남자는 이별이 가져온 막막함에 홈페이지를 만들어 글과 사진들을 올렸다.

여기까지는 그저 그런 연애담이다. 하지만 그 남자의 홈페이지에 하루에만도 2만5천명의 네티즌들이 찾아온다면? 그가 발송하는 e-메일 매거진을 8만명이 넘게 받아 본다면? 실연당한 한 평범한 직장인이 만든 사이트 '솔로 문의 잃어버린 사랑을 위하여(http://www.solomoon.com)' .

조금은 촌스러운 디자인의 이 홈페지에 네티즌들의 소리없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솔로문' 혹은 '손로문'= '솔로문' 에 들어가 '주인장' 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기는 쉽지 않다.

베일에 쌓인 운영자의 이름은 바로 손로문(孫路文.33.사진). 친구들이 부르던 그의 별명 '솔로 문(외로운 달)' 이 그대로 사이트 이름이 됐다.

모 방송국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손씨가 홈페이지의 문을 연 것은 1998년 겨울. 3년 넘게 사귀던 여자친구가 그를 떠난 직후다.

나레이터 모델일을 하느라 매일 다리가 부었다는 그의 여자 친구였다.

이제 홈페이지 게시판 수는 30여개가 됐다. '고민 상담' '공개 편지' 등의 코너에 하루에도 3백여개의 새로운 글이 올라온다.

하지만 방문객이 늘면서 현실적인 문제도 생겼다. 컴퓨터 서버의 임대 비용이 일년에 2백만원이 넘게 된 것. 게다가 홈페이지 운영을 위해 하루에 몇시간씩을 투자해야 하는 일도 그를 지치게 했다.

결국 몇달 전 손씨는 한가지 결정을 내렸다. 방문자들에게 후원금을 요청해 보고 운영비가 모이지 않으면 사이트의 문을 닫기로 했다.

반신반의하며 시작한 일이었지만 놀랍게도 1주일 만에 2년치의 운영비가 답지했다.

◇ '그들' 의 이야기= '솔로문' 의 게시판에는 수많은 사연들이 쏟아진다.

떠난 연인이나 사랑에 관한 글들이 반 수 이상이지만 부모님에 관한 글이나 부부간의 애정이 담긴 글, 삶의 고민에 관한 글도 적지 않다.

헤어진 남자친구의 결혼식을 앞두고 한 여자가 느낀 감정이 그대로 묻어나는 '그의 결혼식' , 곱추였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한 아들이 올린 사연 등은 '솔로 문' 을 방문하는 이들 사이에서 잔잔한 화제가 됐었다.

"멋진 문구나 유명 작가의 글이 아닌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 가 있다는 것이 '솔로 문' 의 인기 비결인 것 같아요. "

손씨에게는 이제 하루에도 5백여명의 사람들로부터 e-메일이 날아든다. 인터넷을 배운 뒤 많은 사이트를 다녔지만 '솔로 문' 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는 60대 할머니에서 사업에 실패해 자살도 생각했으나 '솔로 문' 의 글을 보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는 아저씨까지.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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