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과학으로 세상보기] 음주 판정도 과학적으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음주 사고로 희생되는 사람이 매년 1천2백명을 넘는다. 대대적인 캠페인과 집중적인 단속에도 불구하고 음주운전이 쉽게 줄어들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농경생활이 시작되기 전부터 물을 탄 꿀을 발효시켜 벌꿀술을 만들어 먹었다니 술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었던 셈이다. 원시인에게 새로운 세계를 경험시켜주는 술은 자연에 대한 두려움을 덜고 집단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제례 의식에 쓰였다.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술의 유효성분은 녹말과 같은 탄수화물이 발효돼 생기는 에탄올이라는 알콜이다. 점막을 통해 흡수된 에탄올은 혈액에 남아 신경을 자극하고 근육을 이완시킨다. 그런 술을 적당히 마시면 건강에 도움이 되지만,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특히 판단력과 근육조절 기능을 저하시키기 때문에 도로교통법은 '술에 취한 상태' 에서의 자동차 운전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술에 취한 상태' 는 분명하게 가릴 수가 없다. 입냄새로 판단하는 비위생적인 옛날 방법은 지극히 주관적이어서 아무도 그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다. 그래서 도로교통법 시행령에서는 '혈중 알콜 농도가 0.05% 이상' 이라는 과학적으로 명백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사람마다 취하는 정도는 다르기 때문에 혈중농도가 곧 술에 취한 정도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혈중농도는 공정하고 투명하게 적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 기준으로 삼기에 매우 적절하다. 법치에도 과학이 필요하다는 좋은 예다.

혈중농도를 알아내려면 혈액을 직접 채취해서 기체 크로마토그래피라는 화학적 방법으로 검사해야 한다. 물질에 따라 흐르는 속도가 다른 점을 이용한 과학적 방법이다.

우리 경찰은 법에서 정한 혈중농도의 측정이 필요한지를 알아내기 위한 예비판정 도구로 개발된 '호흡식' 측정기를 쓰고 있다. 체내에 흡수된 알콜은 효소에 의해 분해되기도 하지만 작은 폐포에 분포한 모세혈관을 통해 호흡으로 배출되기도 한다.

그래서 깊은 숨을 내쉴 때 나오는 공기에 들어 있는 알콜을 전기화학적인 방법으로 태우는 산화과정을 거치면 '호흡 알콜농도' 를 측정할 수 있고, 그것으로부터 혈중농도를 '추정' 할 수 있다.

그렇게 측정한 호흡농도가 법에서 정한 혈중농도와 통계적으로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둘은 분명히 다른 것이다.

호흡식 측정기로 음주 여부를 판정하는 것은 비싼 자동차를 가진 사람이 부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해서 자동차 가격으로 부자를 가려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더욱이 지난해 대구경찰청에서 밝혀냈듯이 입을 헹구기만 해도 결과가 달라지고,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음주 여부에 대한 법률적인 판단은 불편하더라도 엄격한 혈액검사를 근거로 해야만 한다.

법은 '법대로' 지켜져야 하고, 어차피 지키지 못할 법이라면 고쳐야 한다. 과학적 기준으로 법을 만드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법을 마음대로 바꿔 적용하는 당국이나, 그런 행정편의주의를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사회에서 법치주의는 허울 좋은 꿈에 불과하다. 현대는 과학을 모르면 자신의 귀중한 권리도 지키기 어려운 과학의 시대다.

李悳煥 <서강대 교수.이론화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