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취업했는데 군대 갔다오면 복직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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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올 2월 수도공고 졸업 후 삼성중공업에 들어간 김선일(18)씨는 친구와 선후배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김씨는 지난해 전국기능경기대회 금상 수상자(옥내제어 직종) 자격으로 취직했지만 친구들 대부분이 취업과 대학 진학의 기로에서 방황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엔 군 복무에 대한 부담이 크게 작용한다. 김씨는 “일부 대기업 외에는 어렵게 취업을 해도 군 복무 후 복직이 어렵다”며 “1학년 때 취업을 희망했던 학생들이 갈수록 대학 진학으로 기우는 데는 이 문제가 크다”고 말했다.

남성 고졸자가 느끼는 ‘군 복무 부담’의 피해의식은 곳곳에서 들을 수 있다. 2000년 서울에 있는 공고를 졸업한 이재환(29·회사원)씨는 “고졸자는 입영 연기가 어려워 학교에서 배운 걸 회사에 접목시킬 시간도 없이 입대하게 된다”며 “군 복무를 마치고 나면 복직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씨는 “나와 내 친구 대부분이 입대할 때 회사에 사표를 내야 했고, 제대 후 재취업에 애를 먹었다”며 “시기를 골라 입대하고 제대 후 복학해 취업준비를 할 수 있는 대학생에 비해 고졸 취업자가 훨씬 불리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과거에 군 미필 고졸자를 뽑았던 은행 등이 최근엔 군필자만 채용하도록 제도를 바꾸면서 ‘병역의 장벽’이 더 높아졌다. 강성봉 서울시교육청 직업진로교육과 과장은 “전문계고 남학생의 큰 고민은 병역 문제”라고 말한다. 본지 여론조사에서 전문계고 고3 남학생 306명 중 172명(56.2%)이 ‘취업자가 대학 진학자보다 병역문제에 불이익이 있다’고 응답한 것도 이런 현실을 보여준다. 황보관 서울금융고 교장은 “우리 학교 출신들이 대학 진학자와 동등한 입대연기 혜택을 받기만 해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졸자에게도 입영연기의 길이 없는 건 아니다. 수능시험이나 공무원 채용 시험에 응시하고 증빙을 제출하면 그때그때 입영이 미뤄진다. 올 1월부터는 전문계고 졸업생에 한해 제조업체에 취업하면 24세까지 병역을 연기할 수 있는 제도가 시행됐다. 하지만 대상이 제한적이어서 그 혜택을 받는 고졸자는 많지 않다. 승마 관련 전문교육을 하는 한국경마축산고 오기홍 부장교사는 “우리 학생들은 병역연기를 할 수 없다”며 “이 문제만 해결돼도 해외취업 등에 적극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땜질식’ 연기 제도와 더불어 2012년부터 ‘산업기능요원’ 선발이 폐지되는 점도 전문계고의 고민을 깊게 한다.

중소 제조업체에서 일정기간 근무하면 병역면제를 해주는 이 제도는 전문계고 출신들이 선호하지만 “군 복무기간 단축 등으로 인한 병역자원 감소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특별취재팀=안혜리·강주안·최현철·김민상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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