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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봉 기자의 도심 트레킹 ② 서울대학교 버들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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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면

난간이 있어 다리처럼 보이지만 아주 작은 댐이다.

서울대학교. 학교도 훌륭하지만 트레킹을 하기에도 이만한 데가 없다. 서울대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정문이다. ‘샤’ 모양의 거대한 금속 조형물은 서울대의 ‘랜드 마크’다. 사진 한 방 찍기 좋다. 그런데 걷기 좋은 곳은 후문 쪽이다. 낙성대 입구에서 1.5㎞를 올라가면 후문이 나오고, 문을 지나 500m쯤 올라가면 도심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다. 이 잔디밭엔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팻말이 없다. 누구나 들어가 마음껏 거닐 수 있다. 바로 ‘버들골’이다. 웬만한 축구장 3개를 붙여놓은 것만 한 잔디밭(약 3만5000㎡·1만500평) 주위로 버드나무가 드리워져 있다. 그래서 학생들은 이곳을 ‘서울 대공원’에 빗대 ‘서울대 공원’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곳은 산책하기 좋지만, 엄밀히 말하면 산책로가 아니다.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걷는 게 아니라 잔디밭 어디든 내딛는 곳이 ‘내 길’이 된다. 특히 잔디밭 이곳저곳에서 뒹굴거나 펄떡거리는 젊음 사이를 걸으려면 발 닿는 대로 가야 제 맛이다.

서울대 후문에서 버들골을 돌아 ‘서울대 댐’을 거치는 코스를 걸었다. 관악구는 낙성대에서 서울대 후문까지의 길 1㎞ 구간을 ‘걷기 좋은 코스’로 지정했다. 하지만 요즘 이 길은 걷기 불편하다. 거리정비사업, 강남순환도시고속도로 공사를 해 화물차가 들락날락한다. 따라서 요즘은 후문부터 걷는 게 ‘버들골 산책’의 정석이다.

버들골 끄트머리에서 노천강당을 지나 버들골 입구로 가는 길. 잔디밭 위로 생겨난 길이 희미하게 보인다.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 4번 출구 앞 마을버스 ‘관악02’를 타고 10분이면 서울대 후문에 도착한다. 걸어서는 25분(약 1.5㎞)쯤 걸린다. 후문부터는 오르막이 시작된다. 처음부터 오르막이냐고 불평할지 모르지만 그리 가파르지는 않다. 400m만 올라가면 평평한 데가 나와 걸을 만하다. 언덕배기에 ‘기숙사 삼거리’가 나온다. 왼쪽으로 꺾어 100m만 가면 드넓은 초원 ‘버들골’이 나온다.

버들골은 원래 골프장이었다. 1972년 유신헌법이 선포된 뒤 대학로에 있던 서울대생들의 반대 시위가 격렬하자 박정희 전 대통령은 서울대 이전 구상을 했다고 한다. 어느 날 헬기를 타고 관악산을 넘던 박 전 대통령이 넓은 골프장을 보고 “이곳으로 서울대를 옮겨라”고 지시했다는 풍문이 있다. 그래서 버들골 입구는 ‘그린’처럼 평평하다.

버드나무·벚나무·소나무가 우거진 버들골 주위를 따라 걸었다. 잔디밭 위로 하늘이 탁 트여 전체 광경이 시원하다. 둘레는 1㎞가 못 된다. 버들골은 산중턱에 있고 완만한 구릉지라 도심보다 선선한 편이다. 여름에도 바람에 땀이 식을 정도다. 버들골 언저리에는 오아시스처럼 버드나무가 드리워진 연못이 있다. 그늘 아래 벤치에서 산책 중 쉼표를 찍을 수 있다.

낮은 온도 탓인지 잔디는 아직 누렇다. 밟으면 사각대는 소리를 내며 푹푹 들어간다. 잔디밭은 산책뿐만 아니라 간단한 운동을 하기도 좋아 보였다. ‘나 잡아봐라’ 놀이 하기에도 제격이다. 혼자 거닐기보다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올 만한 곳이다. 끝에서 끝까지 걷는 데 10분도 안 걸린다. 이곳저곳 한적한 곳을 찾아다니며 잔디밭에 눕거나 앉아 깔깔대는 젊은이를 보는 재미도 있다. 가끔 과감한 애정 표현을 스스럼없이 하는 연인들도 있으니 눈조심 해야 한다.

버들골에서 취사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좋은 점이 있다. 잔디밭 한가운데로 식사 배달이 된다. 인근 중화요리집이나 한식당에 전화를 걸어 ‘버들골’로 가져 달라고 하면 된다. 출출하다면 버들골 옆 교수회관 근처에 있는 솔밭식당에 들러도 좋다. 국수맛이 기가 막히다. 가격도 2000~2500원으로 저렴하다.

버들골을 한 바퀴 돌아 순환도로를 조심스레 건너면 전파천문대 옆 샛길이 있다. 이곳은 서울대생들도 잘 모르는 비밀의 장소다. 관악산 계곡물을 막아놓은 작은 댐이 있다. 아주 작다. 저수지 바닥에서 높이가 3m가 안 된다. 하지만 버드나무가 드리워진 댐 위를 걷는 운치가 있다. 투명한 저수지 수면 아래 개구리알, 도룡뇽알이 보였다.

댐 앞에는 ‘관악캠퍼스 산책로 안내’라는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네 가지 코스가 소개돼 있는데 ‘버들골 주변 산책로’를 제외하고는 거의 등산로에 가깝다. 등산화를 신었다면 이 길을 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내려오는 길이 버겁다면 버들골 옆이나 기숙사 삼거리에서 낙성대 전철역까지 가는 마을버스 ‘관악02’를 탈 수 있다.

글·사진=이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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