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간이 있어 다리처럼 보이지만 아주 작은 댐이다.
이곳은 산책하기 좋지만, 엄밀히 말하면 산책로가 아니다.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걷는 게 아니라 잔디밭 어디든 내딛는 곳이 ‘내 길’이 된다. 특히 잔디밭 이곳저곳에서 뒹굴거나 펄떡거리는 젊음 사이를 걸으려면 발 닿는 대로 가야 제 맛이다.
서울대 후문에서 버들골을 돌아 ‘서울대 댐’을 거치는 코스를 걸었다. 관악구는 낙성대에서 서울대 후문까지의 길 1㎞ 구간을 ‘걷기 좋은 코스’로 지정했다. 하지만 요즘 이 길은 걷기 불편하다. 거리정비사업, 강남순환도시고속도로 공사를 해 화물차가 들락날락한다. 따라서 요즘은 후문부터 걷는 게 ‘버들골 산책’의 정석이다.
버들골 끄트머리에서 노천강당을 지나 버들골 입구로 가는 길. 잔디밭 위로 생겨난 길이 희미하게 보인다.
버들골은 원래 골프장이었다. 1972년 유신헌법이 선포된 뒤 대학로에 있던 서울대생들의 반대 시위가 격렬하자 박정희 전 대통령은 서울대 이전 구상을 했다고 한다. 어느 날 헬기를 타고 관악산을 넘던 박 전 대통령이 넓은 골프장을 보고 “이곳으로 서울대를 옮겨라”고 지시했다는 풍문이 있다. 그래서 버들골 입구는 ‘그린’처럼 평평하다.
버드나무·벚나무·소나무가 우거진 버들골 주위를 따라 걸었다. 잔디밭 위로 하늘이 탁 트여 전체 광경이 시원하다. 둘레는 1㎞가 못 된다. 버들골은 산중턱에 있고 완만한 구릉지라 도심보다 선선한 편이다. 여름에도 바람에 땀이 식을 정도다. 버들골 언저리에는 오아시스처럼 버드나무가 드리워진 연못이 있다. 그늘 아래 벤치에서 산책 중 쉼표를 찍을 수 있다.
버들골에서 취사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좋은 점이 있다. 잔디밭 한가운데로 식사 배달이 된다. 인근 중화요리집이나 한식당에 전화를 걸어 ‘버들골’로 가져 달라고 하면 된다. 출출하다면 버들골 옆 교수회관 근처에 있는 솔밭식당에 들러도 좋다. 국수맛이 기가 막히다. 가격도 2000~2500원으로 저렴하다.
버들골을 한 바퀴 돌아 순환도로를 조심스레 건너면 전파천문대 옆 샛길이 있다. 이곳은 서울대생들도 잘 모르는 비밀의 장소다. 관악산 계곡물을 막아놓은 작은 댐이 있다. 아주 작다. 저수지 바닥에서 높이가 3m가 안 된다. 하지만 버드나무가 드리워진 댐 위를 걷는 운치가 있다. 투명한 저수지 수면 아래 개구리알, 도룡뇽알이 보였다.
댐 앞에는 ‘관악캠퍼스 산책로 안내’라는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네 가지 코스가 소개돼 있는데 ‘버들골 주변 산책로’를 제외하고는 거의 등산로에 가깝다. 등산화를 신었다면 이 길을 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내려오는 길이 버겁다면 버들골 옆이나 기숙사 삼거리에서 낙성대 전철역까지 가는 마을버스 ‘관악02’를 탈 수 있다.
글·사진=이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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