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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신문, 바른 정치의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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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미국 신문사(新聞史)를 전공하는 학자들은 20세기를 뉴욕 타임스의 시대로 규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 신문은 뉴욕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지방지에 지나지 않지만 미국은 물론 세계 그 어느 신문도 넘볼 수 없는 권위와 영향력을 자랑한다. 그래서 고급 신문이니 지적 신문이니 권위지니 하는 말이 모두 이 신문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

이 신문이 이런 성가를 얻은 것은 두 가지 탁월한 전략 덕분이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지식층을 대상으로 삼은 것이 그 하나다. 미국 언론은 한동안 정파 저널리즘에 빠져 있었다. 신문은 모두 특정 정파의 기관지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퓰리처나 허스트 같은 신문 경영의 거목이 나타나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황색신문을 만들었다. 그러나 질 낮은 신문으로는 중립적인 지식계층의 마음을 붙들 수 없었다. 뉴욕 타임스는 거대 신문이 방치한 바로 그 사람들을 겨냥함으로써 단시일에 놀라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지식 수준이 높은 사람을 주대상으로 삼는 편집전략은 판매 부수를 한정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수준을 낮추면 독자가 늘 게 뻔하다. 그러나 이 신문은 독자 수를 늘리기 위해 정보의 수준을 희생하지 않는다. 좋은 언론이 얻어야 할 것은 수가 아니라 질임을 알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를 믿을 수 있는 권위지로 우뚝 서게 한 또 하나의 전략은 사실에 대한 충성이다. 이 신문은 책임 있는 당국자에게 확인한 사실을 객관적으로 균형 있고 공정하게 보도한다는 편집정책을 우직하게 지켜왔다. 1970년의 이른바 서피코 사건은 이 신문이 그런 편집정책에 얼마나 충직한지를 말해준다. 이 신문사 번햄 기자는 은퇴한 경찰에게서 경찰의 부패상에 대해 놀랄 만한 정보를 얻었다. 기자는 엄청난 특종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기사는 신문에 실리지 않았다. 번햄 기자에게 정보를 준 경찰이 이미 현직에서 은퇴했기 때문에 책임 있는 당국자라고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간부들이 그 기사를 쓰레기통에 버렸기 때문이다. 경찰의 부패상은 뒤에 죄다 사실로 밝혀졌지만 뉴욕 타임스의 기자는 다른 신문사의 여러 기자들에 섞여 발표문만을 받아 적을 수밖에 없었다.

교과서적인 편집원칙 때문에 이 신문은 여러 차례 특종을 놓쳤어도 사실에 대한 이 신문의 충성은 몇 번의 특종 따위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크기의 반대급부로 보상받았다. 독자에게 이 신문만은 믿을 수 있다는 확고한 신뢰를 얻은 것이 그것이다. 독자의 그런 믿음이야말로 뉴욕 타임스의 든든한 자산이다.

어떤 신문이 좋은 신문인가. 그 답은 뉴욕 타임스가 말하고 있다. 정파적으로 독립적이며 지적으로 수준 높은 독자를 대상으로 삼는 신문이 좋은 신문이다. 한두번 특종을 놓치더라도 사실에 충실한 알찬 정보를 제공하는 신문이 좋은 신문이다. 좋은 신문이 되게 하는 요소는 둘 같지만 사실은 하나여서 어느 하나를 외면하면 다른 하나도 저절로 폐기된다. 어느 신문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독자를 붙들기에 연연하면 그 신문은 현대 저널리즘의 흔들릴 수 없는 원칙인 객관성.균형성.공정성을 기할 수 없다. 방송도 인터넷 매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의 두 가지 성공전략에 누구보다 관심을 가져야 할 부류는 바로 정치인들이다. 여건 야건 중립적인 지식인이야 안중에도 없고, 정치적 성향이 같은 사람들 입맛 맞추는 일에만 몰두하는 분열의 정치에 국민은 지칠 대로 지쳤다. 사실을 바탕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대안을 내기보다 흠집 내고 덮어씌우기에 급급해 하는 저질 정치에 식상한 지 오래다. 중립적인 지적 공중(informed public)이 차기 대통령 감투를 들고 임자를 찾고 있는데 모두 단골손님한테만 매달려 있으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김민환 고려대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