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미국과 잘 지내려는 영·일·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 오병상 런던 특파원

"그는 위대한 비전과 위기 극복 능력을 갖춘 지도자입니다. 나는 이 분을 존경합니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지난 12일 기자회견에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를 치켜세운 대목이다. 외교적 수사와는 차원이 다른 극찬이다. 블레어 총리가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은 공짜가 아니다. 블레어는 정치적 명운을 걸고 친미(親美) 노선을 걸어 왔다. 지난해 이라크전 참전을 결정할 당시 각료 중 두명이 심한 비난과 함께 사표를 던졌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관련 정보가 엉터리라는 특별위 보고서가 나왔을 당시엔 노동당 내에서 블레어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단 반란 움직임까지 터져나왔다.

그래도 블레어는 미국 편을 떠나지 않았다. 지난 11일 미국을 방문하기에 앞서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총리) 직무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정책도 초지일관이다. 미국이 이라크 팔루자를 공격하기 위해 위험 지역인 바그다드 남동부를 맡아달라고 하자 바스라에 있던 부대를 즉각 투입했다.

블레어가 반대급부로 얻은 성과는 영국의 국제정치적 영향력이다. 블레어는 워싱턴 방문에 앞서 미국에 대해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과 유럽과의 화해 노력을 촉구했고, 부시는 정확히 "그렇게 하겠다"고 화답했다. 마치 블레어가 국제정치의 주역인 듯하다. 블레어의 영향력은 곧 영국의 국익이다. 진보 성향의 블레어는 사실 빌 클린턴과 더 친했다.

영국만이 아니다. 부시는 기자회견에서 중동 민주화에 대해 얘기하다가 "(일본 총리) 고이즈미는 좋은 사람이다. 그가 우리편이란 것은 일본에 민주주의가 정착됐기 때문"이라며 일본을 끌어들였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지난 13일 CNBC방송에 출연해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30년 이래 최고"라고 평가했다.

미국과 잘 지내려 애쓰는 중국.일본.영국은 모두 우리보다 강한 나라다. 그러나 이들도 세계 유일 수퍼파워 미국 앞에선 약자일 수밖에 없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미국은 과연 어떻게 평가할까.

오병상 런던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