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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 문학상 후보작] 나희덕 '상현' 外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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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마음을 다해 노래하고, 세상의 사물들에 그 마음을 입히는 사람이 서정시인이라면, 나희덕씨는 거기에 속한다. 그러나 이런 명명만으로는 저 미만한 서정시들과 나씨를 구별할 수 없다. 나씨는 규정할 수 없는 마음의 색채를 관찰하는 사람, 이름 붙일 수 없는 사물의 빛깔들을 발견하는 시인이다.

나희덕의 서정성은 주관적 감정을 사물에 덧씌우는 형식이 아니라, 삶과 사물에 관한 성찰적 시선과 자기발견의 시학이다. 시인의 최근 시들에서 그 성찰과 발견이 지극하고 깊은 노래가 되는 국면을 만날 수 있으며, 이것은 나씨 시의 성숙을 넘어 우리 서정시의 한 진화의 장면을 이룬다.

시 '도끼를 위한 달' 에서 "이제야 7월의 중반을 넘겼을 뿐인데/ 마음에는 11월이 닥치고 있다" 라고 진술하고, "부실한 잡목과도 같은 생(生)에 도끼의 달이 가까웠다" 고 노래할 때, 도끼로 나무를 베기에 적합한 11월은 "내 안의 잡목 숲을 들여다 보는" 성찰적인 시간대의 이름이다.

또한 그것은 7월 안에서 11월을 발견하는 예견의 시간이다. 그의 시들은 바로 이런 시간대에 걸쳐 있다. 가령 "그의 등에 묻은 지푸라기만 하염없이 떼어내고 있는/ 밤, 그 메마른 되새김질로 십년이 지났다" ( '지푸라기 허공' )라는 문장에서, '십년' 이후의 지금 이 시간은 감상적인 회한의 자리가 아니라, 그 '십년' 을 성찰하는 현재형의 순간이다. 그 성찰은 "자신이 점점 제웅으로 변해가는 줄 모르고" 지낸 세월들에 관한 서늘한 자기응시를 담고 있다.

이런 시간대에서 사물의 이미지는 껍질을 벗고 그 낯선 징후를 드러낸다. "6층에서 바라보는 풍경" 에 서 있는 "벽오동의 上部(상부)" 를 보며, "꽃을 잃고 난 직후의 벽오동의 표정을/ 이렇게 지켜보는 것도 또 다른 발견이다" 라고 진술 할 때,( '벽오동의 上部' ) 그 "또 다른 발견" 은 시적 시선으로 사물을 다시 읽어내는 사건이다.

그 발견은 "거칠고 딱딱한 열매도/ 저토록 환하고 부드러운 금빛에서 시작된다는 사실" 과 "캄캄한 씨방 속에 갇힌 꿈들이 어떻게 단단해지는가" 라는 또 다른 발견으로 이어진다. 하나의 발견이 또 다른 발견에 의해 낯설어지는 사태를 시적 성찰이라고 부를 수 있다.

시 '기러기떼' 에서 "새가 너무 많은 것을 슬픔이라고 부르는" 시인의 명명법은, 그런 발견의 또 다른 사례다. 발견의 상상력은 시인으로 하여금 기러기 떼의 이미지에 '나룻배' 의 이미지를 겹쳐놓고, 거기서 "낡은 노를 젓는 날개소리" 를 들으며, 더 나아가 "헛것을 퍼내는 삽질소리" 와 "젓가락들이 맞부비는 소리" 를 듣는다. 그 발견의 끝간 데서, 화자는 새를 슬픔이라고 부르는 명명 행위 자체를 스스로 성찰하는 데에 다다른다.

이 낯선 발견의 시학은 시 '上弦(상현)' 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 시에서 충만의 순간을 향해 움직이는 여성성으로서의 '上弦' 의 이미지는 천상이 아닌 지상에서 자기 의미를 벗는다. "때로 그녀도 발에 흙을 묻힌다는 것을/ 외딴 산모퉁이를 돌며 나는 훔쳐보았다" 는 고백에서, 그 '훔쳐보기' 야말로 상투성과 금기를 넘어서는 시적 발견의 다른 이름이다.

그 발견 다음에 "그녀가 앉았던 궁둥이 흔적이/ 저 능선 위에는 아직 남아 있을 것" 이라는 예측은, 훔쳐보기가 사물들의 꿈과 상처에 관한 예견으로 전환된 것이다. 시인의 발견을 따라가면, 저기 마음을 들킨 사물들처럼, 우리 상처도 깊어져 환해질까.

이광호 <문학평론가.서울예대 교수>

◇ 나희덕 약력

▶1966년 충남 논산 출생

▶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통해 등단

▶시집 『뿌리에게』『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어두워진다는 것』 등

▶김수영문학상.김달진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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