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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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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호 34면

봄은 꽃과 곤충들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대개 노란산수유, 매화, 개나리, 진달래 순으로 꽃망울을 터뜨리는데 몇 해 전부터는 피고 지는 순서도 없이 한꺼번에 피었다가 시들어 버린다. 또한 목련을 비롯한 많은 꽃이 꽃봉오리를 맺은 채 갑자기 떨어져버려 많은 사람이 의아해한다. 3월의 폭설, 4월의 한파로 봄은 계절감각을 잃어가고 있다.

꽃이 피고 나비와 꿀벌들이 분주하게 날아다니는 봄은 생동적인 자연의 놀이터다. 그러나 환경오염으로 초래된 변화는 생물들의 생장에 큰 영향을 주고 자연을 떠나게 만든다. 이제는 봄이 되어도 나비와 곤충들을 찾기 힘들고, 사방에서 지저귀던 새 소리마저 들을 수 없다. 꽃이 만발하고 생명력이 넘쳐야 할 봄이 됐건만 찬바람만 불고 있다.

곤충들은 자신이 활동하기에 적당한 환경을 찾아 다닌다. 그들도 생존전략을 짜고 진화됨으로써 변하는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것이다. 여름철의 모기나 파리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초고층 꼭대기를 오르내리면서 살고 있다. 기압 변화에 적응해 살아남은 것들은 환경적응력이 뛰어난 것들이다.

토양과 물, 대기오염 때문에 생물의 종(種)도 바뀌고 있다. 옛 추억을 더듬는 사람들은 어린 시절 장난감 대신 가지고 놀던 땅강아지, 여치, 메뚜기 같은 곤충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제는 땅이 오염돼 땅강아지도 사라졌다. 여치와 메뚜기는 농약 살포로 진작 자취를 감추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상의 많은 생물은 환경에 맞춰 진화되고 있다. 찰스 다윈은 170여 년 전 남태평양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핀치새를 보고 진화론의 힌트를 얻었다. 섬마다 먹이 형태가 달라 부리 모양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지중해 심해에서 산소 없이 독성물질로 견디는 ‘로리시페라’라는 생물체가 발견됐다. 모두가 환경에 적응해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들이다. 지구 5대륙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몇 개 안 되는 생물종 중에는 개미들이 있다. 작은 몸체에도 불구하고 경보시스템, 대피 방법, 방어 기술 등을 구사하는 개미떼의 단결력을 보노라면 호랑이나 표범 같은 맹수들도 도망갈 만큼 굉장하다.

지구촌 곳곳에서 강진이 발생하고 가뭄·폭설·황사 등 자연재해가 빈발하고 있다. 지구촌의 재앙을 경고하는 현상들이다. 인간이 행복하게 살려면 하루빨리 오염된 자연생태계를 회복시켜 나가야 한다. 철새들이 떼죽음을 당하거나 물고기 집단폐사, 농작물 흉작이 발생하는 것은 인간의 생명도 위험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들이다. 오늘날 환경문제의 심각성과 범위는 두려움을 느껴야 할 만큼 심각해졌다.

그런 점에서 화학물질의 지나친 남용은 걱정스럽다. 인간과 생물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쳐 생물종 멸종, 암 발생 등의 문제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해충들은 살충제 대량 살포에 박멸되지 않지만 환경이 변하면 스스로 사라지는 특성을 갖고 있다. 여름에 극성을 부리던 해충들이 겨울이 되면 사라지듯 곤충들은 온도에 민감하다. 한때는 화학물질이 기적의 물질로 치부돼 남용됐지만 그 부작용은 자연생태계와 인간을 무섭게 파괴하고 있다. 많은 화학물질과 오염물질은 우리가 먹는 음식물을 통해 체내에 쌓여가고 있다. 이것들은 각종 질병을 발생시키는 원인이 된다. 조용한 살인을 무시할 수 있는가? 이제는 독성이 강한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 화학성 유독물질은 숲의 생물, 지렁이, 곤충, 새알, 꿀벌, 가축, 지하수, 심지어 모유와 태아조직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잃어버린 봄, 사라진 곤충이 다시 모여들고 향기로운 꽃이 꿀벌들을 유혹하고 새들이 노래하는 환경을 만들려면 인간의 의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잘못된 문화생활의 중독에서 벗어나 환경을 살리는 생활습관으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 과학자들 역시 유독성 화학물질 대신 천연물질 개발에 앞장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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