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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저 '오리엔탈리즘'의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 자서전 출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악마의 시』 작가 살만 루시디는 이 자서전을 두고 "마치 저자인 사이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훌륭한 소설 같다" 고 평가했다는데, 충분히 동의할 만하다.

세계적인 소설가 나딘 고디머가 던진 상찬(賞讚)도 기억해둘 만하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이 책에 필적할 만한 다른 자서전은 읽을 수 없을 것이다" . 에드워드 사이드(66.컬럼비아대 석좌교수)가 이 시대 지구촌의 존경받는 논객이자 학자이니 의례적으로 해본 말일까?

아니다. 그것은 책의 무게에 대한 정확한 가늠이다. 우선 어쩌면 이렇게 세심하게 성장기의 기억을 유지하고 있었는지 감탄스럽다. 서술도 20세기의 고전 『오리엔탈리즘』의 작가답지 않게 담백하고 평이하다. 『오리엔탈리즘』이 어떤 책이었나? 서구가 만들어낸 동양에 대한 오랜 편견.이미지와 이를 통한 지배의 방식이 허구에 다름 아님을 문헌고증 작업을 통해 밝혀낸 기념비적 저술이 아니었던가?

이 책을 자서전 그 이상으로 만드는 것은 사이드의 이방인적인 삶, 혹은 뿌리 뽑힌 정체성(正體性) 때문일 것이다. 사이드는 영국 식민지 시절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이집트 카이로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교육은 미국에서 받았던 팔레스타인 사람이다.

또 부유한 집에서 자랐다는 사회적 차이도 있었기 때문에 항상 고립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가 미국과 이스라엘에 의해 망가져갔던 조국과, 끊임없이 방랑을 했던 자신의 삶을 정확하게만 서술한다면, 그것이야말로 20세기의 기록이 될 터이다.

사이드는 "나는 아웃사이더였고, 지나가는 나그네였다" (470쪽)고 고백한다. "학교에서는 에드워드(거짓되고 관념적인 정체성)로 생활했고, 집에서는 2차대전 후 성공한 미국인 사업가의 아들(사이드)로 생활하면서 날마다 이 두가지 생활의 차이를 느껴야 했다" (159쪽)는 것이다.

책의 전체 주제가 바로 이런 묘사에 담겨있다. 원제가 'Out of Place' 인 점을 유념해보라. 사이드의 경우가 더욱 극적일 뿐 지난 세기의 삶이란 알고 보면 프란츠 파농의 책 제목처럼 '자기 땅에서 유배된' 것이 아닐까?

사이드가 이 책의 집필을 시작한 것은 1994년 백혈병 치료를 받으면서부터다. "강한 사명감" 으로 쓰여졌다는 이 책에 대한 지식인 독자들의 기대는 아마도 논객 사이드의 측면일 것이다. 지난 67년 제3차 중동전쟁이 터지면서 상아탑 학자(컬럼비아대 교수)에서 벗어나 미국의 해외정책을 비판하는 행동가로 활동하는 측면이 궁금할 것이다. 하지만 사이드의 서술은 박사학위를 받는 데서 끝이 난다.

성장기의 삶이 자기에게 그토록 중요했다는 것이 사이드의 고백인데, 어쩌면 이 기록만으로도 사이드의 전체 모습을 그려보는 데 불편할 것이 없을 것 같다.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사이드이니만큼 음악 관련 체험과 얘기가 엄청 많은 것도 재미있다. 매우 고급스런 이 자서전을 한군데 막힘없는 읽을거리로 바꿔준 것은 물론 일급 번역자 김석희의 몫일 것이다. 책의 만듦새도 나무랄 데 없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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