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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못한 8인 지금, 어디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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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강태민(21) 일병의 아버지 강영식(50)씨는 “한끼도 먹지 못하고 밤늦게까지 수색 상황을 지켜봤다”며 “천안함이 평택에 오고 장례를 치를 때까지 남아있겠다”고 말했다.

제1·제2 연평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영웅들도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이창기(40) 원사는 6·25 이후 최대 규모의 정규전이었던 1999년 제1 연평해전에서 맹활약했다. 전탐사로 속초함에 승선해 북방한계선(NNL)을 침범한 북한 어뢰정을 침몰시키고 경비정 5척을 격파했다. 전투유공훈장을 받았다. 이 원사는 실종 승조원 46명 중 가장 계급이 높다. 처음 천안함 승조원 명단에는 그의 이름이 없었다. 지난 2일 준사관 시험을 보기 위해 육지에 남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승선 예정이었던 선임하사의 아이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원사가 대신 출동하겠다고 자청했다. 마지막 출동이 돼버렸다.

2002년 제2 연평해전의 영웅인 박경수(29) 중사도 아직 소식이 없다. 당시 전투에서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후 박 중사는 공포심 때문에 6년 동안 배를 타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극복해내고 2008년 천안함에 올랐다. 승진을 하려면 함정 근무가 필수였다. 그는 초등학생 딸을 위해 승진하고 싶었다. 주위에서 “위험하다”며 걱정도 했지만 “전투 임무가 아니다”며 안심시키기도 했다. “배를 타야 해군”이라며 미소짓기도 했다. 모든 것을 이겨낸 박 중사지만 천안함 침몰에선 돌아오지 못했다. “이번 출항은 기분이 이상하다”며 천안함에 오르기 직전 찍은 사진이 마지막이 됐다.

정태준(20) 이병은 부모에게 석 달치 월급을 남기고 사라졌다. 군 입대 후 그가 모은 전부였다. 사고 보름 전 100일 휴가를 나와 통장을 건넸다. 애초에 정 이병이 군대를 간 것도 집안을 돕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어머니가 가슴에 종양이 생겨 전세금 일부를 빼서 수술비로 써야 했다. 정 이병은 해군에 자원했다. “사랑해 사랑해” 하던 아들의 애교가 어머니는 눈에 어른거린다.

박보람(24) 하사는 어머니의 수술금을 마련하고 갔다. 아버지는 아들이 남긴 통장을 꼭 쥐고 있었다. 이달 만기가 돌아오는 적금통장이었다. 다리가 불편한 어머니의 수술을 위해 아들이 매달 모은 월급이다. 이달 초 어머니는 수술을 받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아들의 실종으로 수술은 무기한 연기됐다.

홍익대 조선해양공학과를 다니던 강태민 일병의 어머니는 “배가 좋아서 아직도 안 나오니…” 하고 눈물을 흘렸다. 하사로 임관하면서 해군참모총장 우등상을 받았던 베테랑 해군 최한권(38) 상사, 간부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며 멀미약도 먹지 않던 박성균(21) 하사, 소형선박조종사 자격증을 따려고 공부에 열심이던 장진선(22) 하사의 가족들도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평택=정선언·박정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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