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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여행 4] 정선 레일바이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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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손민호 기자

# 신화 창조

레일바이크를 타는 일은 관광이자 동시에 체험이다. 정선 깊은 산 속을 레일바이크가 헤집고 다닌다.

정선선이란 이름의 철도 노선이 있다. 원래는 예미역(지금은 태백선)을 출발해 증산역(지금의 민둥산역)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튼 뒤 정선역·아우라지역 등을 거친 뒤 구절리역까지 이어지는 45.9㎞ 구간이다. 정선이 석탄으로 흥청거릴 때 정선선은 정선의 젖줄이자 동맥이었다.

그러나 석탄산업이 기울면서 정선선도 함께 기력을 잃었다. 한국철도공사(지금의 코레일)는 마침내 2001년 11월 14일을 끝으로 증산역과 구절리역을 왕복했던 비둘기호 열차 운행을 중단한다. 기관차 뒤에 객차 한 칸만 붙이고 달려 ‘꼬마열차’라 불리며 기차여행 매니어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정선선 완행열차가 역사 속으로 영영 사라진 것이다. 이날 정선선을 달린 1707호 열차는 한국 철도 역사 최후의 완행열차로 이름을 남긴다.

그 뒤로 정선선은 사실상 철도의 기능을 상실한다. 청량리역과 제천역을 출발한 무궁화호 열차가 하루 한 번씩 아우라지역까지 들렸다 나오는 것 말고 정선선을 달리는 기차는 멸종한다. 정선선 종점은 구절리역이지만 아우라지역과 구절리역을 잇는 7.2㎞ 구간은 폐선이 된다.

이 폐선을 관광상품으로 탈바꿈한 게 바로 정선 레일바이크다. 정선 레일바이크는 2005년 6월 30일, 역사적인 첫 운행을 시작한다. 용도폐기된 철도를 활용한 레저활동의 첫 번째 성공 사례다.

정선 레일바이크는 석탄을 나르던 옛 철로를 달린다. 그래서 터널도 여럿 통과해야 한다.

레일바이크는 개장부터 큰 호응을 얻는다. 관광 위주였던 여행 판도가 체험 중심으로 바뀌면서 레일바이크라는 낯선 놀이에 관심이 확 쏠린 것이다. 정선 레일바이크를 운영하는 코레일관광개발에 따르면 운행 첫날부터 올 3월까지 레일바이크를 탄 사람은 모두 120여만 명이다. 2인승 50대, 4인승 50대로 한 번 운행에 모두 280명이 탑승할 수 있는데, 평일의 경우 70% 이상, 주말은 90% 이상 좌석이 찬다. 오전 9시부터 두 시간 간격으로 하루 다섯 번 출발하는 레일바이크를 여름 성수기 때는 오후 7시와 9시 두 번 연장 운행하는데 이마저도 좌석이 모자란 판이다. 이쯤에서 코레일관광개발 박종해 정선지사장의 엄살을 듣는다.

“표를 달라는 여행사들 때문에 명함을 안 갖고 다닙니다. 여름엔 새벽 5시부터 줄을 선다니까요. 이 산골까지 찾아왔는데 표를 못 구했다고 항의하는 손님도 허다합니다.”

레일바이크가 지나는 간이역 주변의 풍경.

정선 레일바이크의 성공은 여러 아류를 생산하고 있다. 경북 문경과 전남 곡성도 폐선이 된 철로에 레일바이크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고, 강원도 삼척은 레일바이크를 위해 바닷가를 끼고 아예 새 철로를 놓고 있다.

# 관광과 체험을 동시에

정선 레일바이크는 철로 7.2㎞를 달린다. 보통 30~40분 걸린다. 이때 동력은 오로지 두 다리다. 2명이 부지런히 자전거 페달을 밟아야 레일바이크가 전진한다. 4인승도 앞자리 2개엔 페달이 없어 뒷자리에 탄 두 명이 엔진 역할을 맡아야 한다. 하나 어린 학생이나 어르신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레일바이크는 구절리역을 출발해 아우라지역까지 편도만 운행한다. 코스 대부분이 내리막 경사를 이루고 있어서다. 반대로 아우라지역에서 구절리역까지는 ‘풍경열차’라 불리는 관광열차를 타고 편하게 올라온다. 추가 요금은 없다.

남녀노소 누구나 힘들이지 않고 레일바이크를 즐길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내리막 경사에 있다. 다른 지역의 레일바이크보다 정선 레일바이크에 유독 사람이 몰리는 것도 같은 이유다. 다른 지역의 경우 코스 대부분이 평지를 달려 힘들고 지루하다는 반응이 많다.

레일바이크은 일종의 레저 체험이지만 관광이기도 하다. 정선 레일바이크는 한반도에서 가장 깊숙한 두메산골을 달린다. 정선과 강릉을 가르는 해발 1322m 노추산 자락을 맴돌아 아우라지까지 흐르는 송천을 따라 철로가 놓여 있고, 이 철로를 레일바이크가 달린다. 정선 레일바이크는 숲을 헤치고 깎아지른 절벽을 달리고 터널을 지나고 다리를 건너고 마을을 휘감아 돈다.

안전사고 위험은 없어 보인다. 아무리 경사가 급해도 30도를 넘지 않으며, 브레이크가 있어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앞차와 일부러 부딪치는 장난은 삼가야 한다. 혹여 탈선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레일바이크가 건널목을 건널 땐 직원이 그때마다 신호를 조작한다. 아우라지역을 앞둔 1㎞ 구간이 경사가 거의 없는 평지여서 막판에 힘을 내야 한다. 신나게 내리막을 내려갈 때 얼굴을 때리는 바람이 시원하다.

# 덤

레일바이크 종점에 있는 어름치 카페.

한국을 대표하는 민속 5일장인 정선장이 12일 본격적인 판을 벌였다. 정선장은 매달 2, 7일 열리는 전통 5일장이지만,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해 외지에서 몰려오는 관광객을 맞아왔다. 하나 겨울엔 행사 없이 장만 섰고, 두메산골 정선에도 봄이 찾아와 12일 장부터 예년의 행사를 다시 시작한 것이다. 정선장에 워낙 관광객이 몰리다 보니 원래 장이 안 서는 주말에도 행사가 열린다. 장이 서는 읍내와 구절리역 사이는 승용차로 약 40분 거리. 오전에 정선장을 둘러보고 오후에 레일바이크를 체험하는 여정이 가능하다.

아우라지역에서 구절리역으로 올라올 때 타는 풍경열차.

아우라지역과 구절리역에는 각 역을 대표하는 명소가 있다. 아우라지역에는 어름치라는 민물고기 모양의 카페 ‘어름치 카페’가 있고, 구절리역에는 여치 모양의 카페 ‘여치의 꿈’이 있다. ‘어름치 카페’는 건물 외부에 일일이 타일을 붙여 물고기 비늘을 표현했고, ‘여치의 꿈’은 열차 객차 두 칸을 포개서 지었다. 두 건물 모두 공공디자인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두 카페에서 음료와 간단한 음식을 사먹을 수 있다.

이색 숙소도 있다. 구절리역 구내에 있는 기차 펜션이다. 실제로 운행했던 열차 객차를 개조해 숙박시설로 만들었다. 방은 모두 9개로 크기에 따라 1박에 7만원짜리 5개와 10만 원짜리 4개가 있다. 시설이 제법 잘 갖춰져 있다. 최근엔 1박에 7만원 하는 캡슐하우스 3동도 개장했다. 주말엔 예약이 잔뜩 밀려 있다.

이용 정보 정선 레일바이크 티켓을 구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구절리역 매표소에서 직접 표를 산다. 둘째, 인터넷(www.railbike.co.kr)으로 예약을 한다. 이 두 가지 경우 가격은 같다. 2인승 1만8000원, 4인승 2만6000원. 033-563-8787. 레일바이크 체험을 포함한 패키지 상품을 구입하면 별도의 구매 절차 없이 레일바이크를 즐길 수 있다. 대표적인 게 코레일관광개발(www.korailtravel.com)이 운영하는 ‘정선아리아리 열차’다. 열차는 매일 편성돼 있지만, 정선장이 서는 매월 끝자리 2, 7일과 주말에 이용하길 권한다. 오전에 정선 5일장을 구경하고 오후에 레일바이크를 타는 당일 일정이어서다. 레일바이크 요금을 포함해 주중 4만9000원, 주말 5만6000원. 레일바이크는 안 타고 정선 5일장만 하루 일정으로 관광하고 나오는 상품도 인기다. 주중 2만9000원, 주말 3만1000원. 1544-7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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