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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 아동 재판 출석 않고 영상 녹화해 증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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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법무부가 성폭력범 등 흉악범죄자의 신상공개를 허용하는 쪽으로 ‘수사공보준칙’을 개정할 예정이다.

개정된 준칙에 따르면 검찰은 성폭력범 등 흉악범죄자의 이름·나이 등 신상을 공개할 수 있다. 또 언론의 검찰청사 내 사진·방송 촬영이 가능하게 됐다. 그러나 촬영 장소는 청사 출입구 등 일부로 한정할 방침이다. 법무부는 구체적인 내용을 확정해 이르면 이달 안으로 개정 준칙을 공개할 계획이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15일 “지난달 31일 국회에서 통과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특정 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의 취지에 따라 준칙 개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들 법률은 검사와 사법경찰관은 죄를 범했다고 충분한 증거가 있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할 때 성폭력 범죄자의 얼굴·이름·나이 등을 공개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피해가 중대한 특정 강력범죄자의 신상정보도 공개 대상에 포함됐다.

한국외대 법학과 문재완(법학) 교수는 “피의자의 혐의 내용을 정확히 기술한다면 신상공개 자체가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피의자·피고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난다”(서석호 변호사)는 반대의견도 있다.

올 1월 시행된 수사공보준칙은 지난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비판여론이 일면서 제정됐다. 이 준칙은 수사 내용을 기소 전 공개하지 못하도록 했다. 소환·조사·압수수색·체포·구속 등 과정에서 사건 관계인에 대한 촬영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법무부는 각계 대표 13명으로 구성된 ‘수사공보제도 개선위원회’를 발족시켜 준칙을 확정했다.

◆성폭력 아동 법정에 안 나가도 돼=대검찰청은 이날 ‘성폭력범죄 사건처리지침’을 전국 18개 지방검찰청에 보냈다고 밝혔다.

새 지침은 아동 성범죄 피해자가 진술조서를 작성하지 않고 진술장면을 촬영한 영상녹화물을 증거로 삼아 재판을 진행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피해 아동은 법정에 증인으로 나가지 않게 됐다. 이영주 대검 형사2과장은 “진술조서 작성과 법정 증언 과정에서 피해 아동에게 2차 피해가 일어난다는 지적이 나와 새 지침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검찰은 피해 아동의 진술조서 작성과 영상녹화를 함께 했다. 범죄 입증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법정에 증인으로 세웠다.

검찰은 재판부가 진술조서 없는 영상녹화물을 증거로 채택하지 않으면 적극적으로 항소할 방침이다. 피해자가 원하면 검사나 수사관이 출장조사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번 지침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다. 재판부가 검찰이 제출한 영상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검사들이 피해 아동을 상대로 유도심문을 하거나 영상녹화물이 처음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촬영되지 않아 법원에서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이명주 변호사(대한변협 인권이사)는 “검찰이 피해 아동을 상대로 조사할 때 전문가를 반드시 동참하도록 하는 내용을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철재·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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