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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의 꿈] 4. 멕시코-다면체의 얼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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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멕시코시티 국립예술궁전에서 관람한 민속무용극은 우리 일행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각 지방의 민속춤으로 그 지방의 역사와 풍속을 표현하는 뮤지컬 비슷한 것이었는데, 장면마다 색색가지로 바뀌는 원색적 의상이며, 귀가 따가우리만큼 활기찬 음악 하며 고즈넉한 데 익숙한 우리네 정서를 주눅들게 하기에 족했다.

호전성.진취성.낙천성이 그 무용극의 전체적인 특징이었다.

한(恨).은유적 신비감.내세관이 우리 국악극이라면, 멕시코 뮤지컬은 환희.속도감.현세주의를 반영하고 있었다.

국립예술궁전에서의 화려한 그림이 떠오르면 내겐 또 한장의 풍경화가 거기에 겹쳐진다. 내가 탄 차는 멕시코시티 교외의 언덕 사이로 파고들어간다.

언덕에는 껌처럼 다닥다닥 눌러붙은 오두막 천지고, 싯누런 흙벽이 이고 있는 건 형형색색의 함석 지붕들이다. 옹색하게 어깨를 맞댄 집들 때문에 하늘도 하늘 같지 않다.

이상의 소설 '날개' 에 표현된 대로 '손수건 만한' 하늘이 바로 저런 거지 싶다. 벌거숭이 꼬마들 사타구니 사이를 개들이 떼지어 돌아다니니 어느 게 짐승 꼴이고, 어느 게 사람 꼴인지.

희화적인 필치를 가진 보텔로의 그림에는 이스트로 잔뜩 부풀려 놓은 듯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시꺼먼 눈썹에다 배통이 빵빵하고 다혈질에다 종아리가 부실해 보이는 이곳 주민들은 하나같이 보텔로의 화집에서 금세 뛰쳐나온 것만 같다.

이 나라에서 뚱뚱하다는 것은 상류층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은 채식 위주로 주로 소식을 하기 때문에 보기 좋은 몸매를 갖고 있다.

그 찌들어빠진 풍경화 위로 또 한장의 그림이 겹쳐진다. 외국인과 상류층이 모여 산다는 귀족동네가 바로 그것이다.

얼마 전 고국에 왔다 간 아내 친구는 한국의 부유층과는 비교도 하지 말라면서 그 사람들 사는 모양새를 보면 입이 딱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란다.

집들은 성채를 이루고 있으며 아이들 교육이건, 놀이시설이건 서민층 자제와는 아예 노는 구역이 달라 평생 서로 옷깃 스칠 일이란 없으며, 그 부(富)와 특권은 16세기 스페인의 침략 이래 확고부동하게 세습돼 내려온 것이란다.

언젠가 대사관에서 초대받았던 날 밤, 대지주의 장원(莊園)을 개조해 만든 초대형 음식점을 드나들던 사람들이 곧 그들이리라. 전용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백화점 쇼핑을 가는 사람들도 있다니 말해 무엇하랴. 이승에서 일단 못 가진 가정에서 태어나면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도 신분상승이 안되는 나라란다.

혁명아 사파타의 이념을 계승한 사파티즘이 창궐해, 저 아래 지방 치아파스로부터 수백㎞ 장사진을 이룬 농민들이 줄줄이 수도로 들이닥친다. 원주민 인디헤나의 생활방식.고유의 언어.자취권.토지 반환을 요구하면서 시위가 가열된다.

한편 치아파스에서 정부군과의 일전을 끝낸 반군은 고산 깊숙이 잠적한다. 원주민의 생활상을 안타깝게 여긴 어느 신부의 지도편달로 이 혁명운동은 아직도 내연(內燃)상태로 불씨가 남아 있다.

학생수 30만명에 육박한다는 멕시코 최대의 국립대학 우남대의 시위가 1968년에 있었고, 그 당시 쿠바의 체 게바라가 학생과 시민들의 우상이었으며, 우리네 시인.작가들이 강연회 연사로 초청받은 또 다른 대학에서는 미르케스를 닮은 한 남학생의 날카로운 질문이 바로 이 치아파스 반군에 관한 난처한 물음이었다.

그러나 정치.경제적인 문제에서 눈을 잠시 돌리기만 하면 이 나라는 결코 그런 골치 아픈 문제만 산적해 있는 나라가 아님을 알아차리게 되리라.

아열대와 사바나, 사막과 스텝, 고산지대와 늪지대가 한 국토 안에 공존한다. 각 종족들의 언어가 수십.수백종에 이르고, 각 지방의 특산물.야생동물.식물군(群).생활관습이 다종다양하다.

베라크루스.과달라하라.와하카.메리다.칸쿤.아카풀코.팔렌케 등의 토속풍.바로크풍.비잔틴풍인 어느 도시든 유니크한 자기만의 색깔을 갖고 있으니만큼 우리에게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고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 평범한 도시는 별로 없다.

우남대의 거대한 모자이크 벽화를 만든 시케이로스, 그의 평생 연인이자 평생 원수였던 프리다 칼로.

러시아혁명에서 주도권을 뺏긴 트로츠키가 두 부부와 생전에 가까이 살았다는 코요아칸은 감탄사를 자아내게 했던 콜로니엄 시대의 고전적인 마을인데, 거기 말고도 매력적인 도시가 부지기수다. 중국.인도마냥 유서깊고 땅덩어리 큰 나라가 다 그렇듯 열흘.보름 관광으로는 이 나라의 진면목을 제대로 볼 수 없다.

민속.기후대.예술적 유산.고대 유적이 방대한 멕시코를 제대로 품에 끌어안기 위해서는 최소한 3개월이 필요하다는 말이 실감난다.

고대의 도시국가간에 전쟁이 그칠 날이 없어 호전적이긴 하면서도 음악.회화.조각예술에 있어서도 빼어난 유산을 갖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이곳 여행이 난생 처음인 나로서는 이 나라 전체를 둘러싼 원색적인 화려한 색감이 제일 먼저 놀라웠다. 곳곳의 건축물과 이 나라 미술의 자유분방하고 강렬한 색조는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이 나라 음악의 거침없는 리듬과 멜로디는 어디서 물려받은 것일까.

우리네 화훼단지에서 자주 보던 열대성 화초들의 고향이 다름아닌 이 멕시코란 사실을 이번에야 알았다.

이 나라에 와보니 비로소 꽃들의 그 강렬한 원색이 제대로 살아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예술 취향이 한껏 풍겨나는 집들의 실내 타일 빛깔은 카리브해의 에메랄드 빛깔을 닮았다.

멕시코가 세계 미술시장에 배짱 좋게 내놓을 수 있었던 리베라.오고르만.타마요와 같은 큰 화가들의 작품을 멕시코시티 길거리의 벽면과 지붕에서, 또는 민속이 잘 보존된 지방도시의 전시장에서, 손끝으로 직접 만져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문학으로는 아스투리아스.옥타비아 파스.바빌라.푸엔데스 같은 세계적 작가들이 출현했는데, 문학이든 미술이든 그들의 성취는 이들 방대한 문명의 연원과 관계가 없지 않다. 그들의 예술에는 그들의 뿌리인 인디헤나의 전통적인 양식이 언제나 원경으로 또는 근경으로 투영되게 마련이다.

쿠바 작가.예술가 동맹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라틴 문학의 전반적인 리얼리즘에 관해 내가 뭐라고 한마디 질문을 던졌을 때, "중남미의 문학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문화와 인종의 다양성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고 조용히 단언하던 쿠바의 작가 레오나르도 파두라의 얘기는 곱씹어볼 만하다.

그레이엄 핸콕의 명저 『신(神)의 지문』에서는 멕시코 땅 곳곳에서 번창했던 고대 문명의 시작이 기원전 1000~2000년 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앞선 7000~8000년 전이라고 주장하는데, 귀 기울여볼 만한 진실이라고 생각된다.

화산이 폭발했든, 얼음덩어리가 전지구를 덮쳤든 어쨌든 은하계가, 그것도 한 개도 아니고 셀 수도 없는 은하계의 무리가 저리도 대기권 밖으로 가없이 펼쳐져 수억광년을 견뎌왔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문명에 버금가는 문명들이 융기와 침강을 거듭해 왔다는 가설이 더더욱 진실되게 마음으로 파고든다. 핸콕의 책을 덮으면서 불현듯 수년 전에 읽은 『티베트 사자(死者)의 서(書)』가 떠오르곤 하는 건 어인 일인지 모르겠다.

박영한 (소설가.동의대 한국어문학부 교수)

사진=황지우 (시인.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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