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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막걸리 붐’ 지속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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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일본에서도 막걸리 열풍이 불고 있다는 얘길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들은 거나하게 취하자 막걸리에 제격이라며 한식 메뉴를 잇따라 추가했다. 상추를 더 달라는 사람도 있었고 삼계탕을 시키는 사람도 있었다. 이 사람들이 사케(청주)와 일본 소주만 고집하던 일본인이 맞는가 싶을 정도였다.

막걸리가 일본에서 인기를 끄는 것은 사실 의외다. 자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일본인들은 술도 ‘신토불이’를 최고로 여긴다. 이들이 사케를 애지중지해 온 역사와 전통을 보면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사케는 벼 품종부터 다르다. 쌀알을 많이 깎아낼수록 고급주가 되기 때문에 알맹이가 작은 일반 쌀은 부적합하다. 이런 과학이 작용하면서 사케는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했다. 한국에서도 천덕꾸러기였던 막걸리는 낄 틈이 없었다.

술 소비의 감소로 크게 줄었지만 사케 양조장은 현재 큰 것만 5000개에 이른다. 명문 브랜드는 지금도 이름값을 한다. 구보타만주·고시노간파이·핫카이산 등은 1.8L 병의 소매가격이 5000~1만 엔에 이른다. 웬만한 고급 위스키를 뺨친다. 일부 브랜드는 서울의 일류 호텔에서 한 병에 100만원가량이라고 한다.

일본인의 자국산 술 사랑은 소주에서도 넘친다. 일본 소주는 증류주여서 고구마·보리·메밀·양파 등 재료의 향을 그대로 낸다. 모리이조·마오·무라오 등 ‘3M’으로 불리는 브랜드는 소매가 한 병에 3만~4만 엔이다. 술이 보약보다 비싼 것이다. 지역마다 특유의 명품 브랜드 파워를 키워왔기 때문에 이런 대접을 받게 됐다.

반면 한국은 보릿고개를 넘기던 시절 사치스럽다며 쌀 막걸리 제조를 금지시켰다. 주세 확보를 위해 밀주 제조도 엄격하게 단속됐다. 그러다 한국에서 막걸리는 잊혀진 술이 됐다. 그 사이 일본은 전통 술을 키우면서 사케를 일본 술의 대명사로 만들었다. 최근 일본의 막걸리 붐은 우린 뭘 했는지 한심한 생각을 들게 한다.

한국의 주류 업체들은 뒤늦게 일본 막걸리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배상면주가와 진로재팬은 이미 시판에 나섰고, 롯데주류재팬도 6월부터 합류한다. 뭐든 내 것으로 만드는 데 능숙한 일본인들은 벌써부터 막걸리 현지 생산을 궁리하고 있다. 김치도 큰 인기를 끌지만 90%는 이미 현지화됐다. 막걸리는 이 전철을 밟게 하지 말자. 하루 아침엔 어렵겠지만 일본에 고가로 수출되는 명품 막걸리의 등장도 기대해 본다.

김동호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