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태진 기자의 오토 살롱] BMW, 14년 전 디자인으로 돌아간 ‘5시리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9면

이달 1일 BMW코리아가 출시한 6세대 5 시리즈(사진)가 자동차 전문가들과 ‘비머(BIMMER·BMW 매니어를 일컫는 말)’들 사이에서 화제에 올랐다. 5 시리즈는 올해 30여 개의 수입 신차 모델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차다. 보름 만에 3000대가 넘게 계약됐다.

논란의 대상은 디자인이다. 앞뒤 모습이 14년 전 출시됐던 4세대 5 시리즈로 돌아갔다. 5세대에 대박 났던 크리스토퍼 뱅글 전 BMW 디자인 총괄의 냄새가 모두 사라졌다.

2000년 이후 자동차 업계에 가장 영향을 끼친 디자이너로 손꼽히는 뱅글은 지난해 초 53세의 나이에 돌연 은퇴했다. 남은 인생은 건축가로 변신하겠다는 짤막한 변을 남겼다. 1992년 BMW에 합류한 그는 ‘자동차 디자인계의 이단아’로 불리며 늘 화제의 중심이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독특한 화법으로 언론과 비머로부터 찬사와 혹평을 함께 받았다. 2003년 출시된 Z4를 설명할 때는 ‘옆면 디자인에는 선악과를 따먹은 이브의 수줍음이 담겨 있다’는 식이었다.

그의 대표작은 2001년 출시된 7 시리즈다. 그동안 BMW가 추구해 온 직선의 아름다움이라는 요소를 파괴한 혁신적인 디자인이었다. 치켜올라간 엉덩이를 연상시키는 트렁크 디자인은 ‘뱅글 버트(butt·엉덩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비머로부터 암살 협박까지 받았다. 하지만 ‘위엄과 존재감’이라는 디자인 요소는 대성공으로 이어졌다.

BMW는 뱅글의 디자인을 앞세워 5,3 시리즈를 잇따라 성공시켰다. 2005년에는 벤츠 판매량을 추월하며 고급차 1위에 등극했다.

그러나 그가 은퇴한 뒤 나온 5 시리즈는 무난함을 택했다. 실내 공간과 정숙성은 렉서스만큼 커지고 조용해졌다. 헬무트 판케 전 BMW 회장은 “BMW는 도로와의 소통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엔진 소리뿐 아니라 주행음까지 돈을 들여 개발한다”며 렉서스의 철학 없는(?) 정숙성을 비꼬기도 했다.

아이러니는 새로 나온 5 시리즈가 렉서스처럼 변신한 점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변화의 계기를 한 발 뒤늦은 BMW의 중국 진출과 2008년 출시된 7 시리즈의 판매 부진을 꼽는다. BMW는 5 시리즈의 차체 크기를 키워 7 시리즈의 대체효과를 노렸다. 볼륨감 있는 차를 좋아하는 중국 소비자들의 기호를 감안한 결정이다.

결국 강렬한 개성 대신 점잖은 무난함을 택한 것이다. BMW가 세계 최대 시장이 된 중국을 염두에 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100년 가까이 지켜온 ‘드라이빙 머신’이라는 BMW 고유의 유전자가 훼손되지나 않을까 매니어들은 우려하고 있다.

김태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