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없고 가족만 있는 베이비붐 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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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58년 개띠. 고교 평준화 제도가 시행되면서 ‘뺑뺑이’로 고등학교에 들어간 첫 세대다. 청소년기와 대학생활에 암울한 군부독재를 경험했다. 30세가 되던 1987년에는 6월 항쟁에 ‘넥타이 부대’로 대거 참여했던 것도 이들이다. 마흔 살이 되었을 때엔 외환위기로 조기퇴직과 정리해고의 아픔을 맛봐야 했다. 이제 겨우 미국발 금융위기가 잦아들었지만 요즘은 직장에서 은퇴해야 할 시기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58년 개띠’라는 말에서 삶의 고단함이 물씬 묻어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58년 개띠는 55~63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4·19세대와 386세대 사이에 ‘낀 세대’로도 불리는 베이비부머의 특징을 분석한 통계자료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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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11일 발표한 ‘베이비붐 세대의 특징’엔 베이비부머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이들은 부모 공양에다 자녀 결혼비용까지 걱정하고 있다. 정작 자신은 원하는 만큼 학교교육을 받지 못했고, 1년에 문화예술 공연을 한 번 관람하기도 쉽지 않다. 퇴직이 코앞에 다가왔지만 노후 준비로는 고작 국민연금에 의존하고 있을 뿐이다.

◆가족에 대한 부담=베이비붐 세대 중 자신이 원하는 단계까지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64.2%로, 전체 평균(60.1%)보다 높았다. 주로 경제 형편이 나빠(79.2%) 맘껏 공부를 하지 못했다. 베이비부머의 99.1%가 자녀의 대학교육비를 지원해야 한다고 했고, 90%는 자녀 결혼비용도 자신들 몫이라고 답했다. 베이비부머 가구주의 부모 중 생활비를 스스로 해결하는 이들은 30.8%에 불과했다. 베이비붐 세대의 10명 중 7명은 부모 생활비까지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선지 베이비붐 세대의 가족관계 만족도는 전체 평균에 못 미쳤다. 직업·학업 등의 이유로 배우자나 미혼 자녀가 다른 지역에 사는 베이비부머 가구주 비중도 25.5%로 전체 평균(16.5%)보다 높았다.

◆노후 대비도 부실=노후 준비를 하고 있다고 응답한 베이비부머는 80%였다. 하지만 노후 준비 방법으로는 국민연금이 38.5%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예금·적금(24.3%) ▶사적연금(19.5%) ▶기타 공적연금(7.1%) 순이었다. 열 명 중 두 명은 노후 대비를 하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준비할 능력이 없어서(50.3%)’였다.

노후를 대비하는 대신 현재 순간을 맘껏 즐긴다고 보기도 힘들었다. 1년에 공연·전시나 스포츠를 한 번이라도 관람한 베이비부머는 47.8%에 불과했다. 지난 1년간 한 번이라도 자살 충동을 느낀 베이비부머는 7.1%였다. 그 이유로는 ▶경제적 어려움(52.8%) ▶가정불화(18.0%) ▶외로움(10.6%)이 꼽혔다.

그래도 주변에 대한 관심은 많았다. 지난 1년 동안 사회복지단체 등에 후원금을 낸 사람은 베이비붐 세대 인구의 40.9%로 15세 이상 인구의 기부 비율(32.3%)보다 높았다.

서경호 기자

◆베이비붐 세대=전쟁이나 불경기가 끝난 뒤 사회가 안정되면 출생률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때 태어난 이들은 사회의 최대 인구집단을 구성하면서 사회 전반에 영향을 준다. 한국에선 1955~63년에 태어난 47~55세 집단을 베이비부머로 부른다. 전체 인구의 14.6%를 차지한다. 지금까지 사회의 중심에서 활동해 왔으나 올해부터 본격적인 은퇴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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