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인연의 좋고 나쁨은 남이 아닌 내가 하기 나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61호 31면

법륜 스님은 일상생활 문제에 대해 속 시원한 해답을 제시하는 즉문즉설로 유명하다. 신인섭 기자

우리나라 양대 종교인 불교와 그리스도교를 각기 창시한 석가모니와 예수에 대해 두 가지 공통적 의문이 있다. 첫째는 인류 역사 속에 들어온 역사적(historic) 부처와 그리스도는 실제 ‘어떤 사람’이었으며 ‘어떤 말씀’을 했느냐는 것이다. 비관적인 연구자들은 그들의 역사 속 실체를 복원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영혼의 리더<43>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 스님

두 번째 문제는 부처와 예수가 역사의 어느 한 시점에 들어왔기에 파생되는 문제다. 그때는 없었으나 지금은 있는 것들이 있다. 예컨대 담배, 과외, 텔레비전 채널 다툼, 지구온난화 같은 게 그 시대엔 없었다. 두 분은 이러한 오늘의 문제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

교리 쉽게 설명하는 행동가
부처·불교와 관련, 두 문제에 대해 일반인들이 수긍할 만한 답을 내놓는 스님이 있다. 법륜(57·사진) 스님이다. 스님은 불교 경전과 불교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역사적 부처에 대해 쉽게 설명하며 오늘을 사는 불자들이 대면하는 문제에 부처의 정신에 따른 해법을 제시한다.

수행 공동체인 정토회의 설립자이자 지도법사인 법륜 스님은 평화재단·제이티에스·에코붓다의 이사장이며 전북 장수군 소재 죽림정사의 주지이기도 하다. 죽림정사는 불교 근대화·대중화의 선구자인 용성(龍城·1863~1940) 스님을 기리는 기념관과 교육관이 있는 사찰이다.

법륜 스님은 2000년에 만해상 포교상을, 2002년에는 아시아의 노벨 평화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평화와 국제이해 부문)을 받았다. 스님은 필리핀·인도네시아·중국 등지에서 자연재해 피해가 발생하면 긴급구호에 나서며 북한 기아 문제 해결을 위해 발벗고 뛰기도 한다. 스님의 저서로는 『실천적 불교 사상』 『인간 붓다』 『금강경 이야기』 『반야심경 이야기』 『행복하기 행복전하기』 등이 있다. 스님을 6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평화재단에서 만났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불교 신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알면 좋은 불교 교리는 무엇입니까.
“인연법(因緣法)이 불교 교리의 핵심입니다. 세계관이나 철학적으로 말하면 연기법(緣起法)입니다. 인연법은 이 세상에서 사람이 겪는 모든 일이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원인이 있어서 결과가 일어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현실 속의 불교라는 종교와 원래 부처님이 가르친 불법하고는 좀 다른 점이 있죠. 책에서 보는 불법과 절에서 행해지는 불교도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연법은 모든 불교의 공통분모입니다.”

-부처는 인연법을 어떻게 설명했습니까.
“부처님 당시 인도 종교의 가르침은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라도 사제 계급인 브라만이 기도해주면 하늘나라에 태어난다고 믿었습니다. 반면 기도를 안 해주면 하늘나라에 태어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과연 그런지 어느 제자가 의문을 품고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부처님은 그를 연못으로 데려갔습니다. 돌멩이를 집어서 물에다 던졌습니다. 돌멩이는 가라앉았죠. 부처는 묻습니다. ‘연못가에 바라문들이 모여 ‘돌멩이여, 물 위로 뜨라’고 기도하면 뜨겠느냐’ 제자는 대답합니다. ‘뜨지 않습니다. 무거운 것이 가라앉는 것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부처는 사람이 살생을 하고 도둑질을 하고 성폭행을 하고 거짓말을 한다면 그 지은 업은 검고, 무거워서 물속으로 가라앉는 돌멩이처럼 저절로 지옥으로 가게 된다는 것을 비유로 설명한 것입니다.

부처의 설명은 계속됩니다. 부처님이 기름을 병에 담아 물에 던졌어요. 기름이 병에서 빠져나와 수면 위로 떴습니다. 부처는 다시 묻습니다. ‘바라문들이 모여 기름이여, 물 밑으로 가라앉으라’고 하면 그렇게 되겠느냐’ 제자는 ‘아니요’라고 답하죠.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주고 가난한 사람을 돕고 괴로운 사람을 기쁘게 해주고 진실을 말한다면 그 지은 업은 희고 가벼워서 기름처럼 저절로 하늘나라로 가게 된다는 것을 쉽게 풀어서 설명한 것입니다.”

불교 ‘연기법’ 알면 억울한 일 없다

-인과법을 알면 어떻게 됩니까.
“자신이 지은 인연을 알게 되면 억울하고 분한 일이 없게 됩니다. 또한 복을 받으려고 복을 비는 게 쓸데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좋은 대학에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인과법에 안 맞죠. 인과법에 의하면 복을 받으려면 복을 지어야 합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하지 않습니까. 평범한 얘긴데 대중은 평범한 진리를 따르지 않고 허황된 생각을 하고 기대합니다. 인과법은 북한 지원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북한에 인도적인 지원을 할 때에는 인도적 지원의 결과로 인도적 문제가 개선됐느냐 안 됐느냐만을 평가해야 합니다. 지원은 인도적 지원을 해놓고 결과는 정치적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인과법을 모르니까 그런 기대를 하는 것이지요. 기대에 못 미치니까 불평과 불만이 생기지요,“

-연기법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이 세계를 인식할 때에 나와 너, 모든 사물이 하나하나 다 개별적·독립적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게 인식한 결과는 홉스가 이야기한 대로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약육강식, 적자생존이라는 것이지요. 내가 살기 위해서는 상대를 죽일 수밖에 없고 내가 이익을 보려면 상대가 손해 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은 잘못된 세계관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재의 세계는 다릅니다. 모든 존재는 서로 연관되어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연기법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있어야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적용한다면 네가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고 네가 불행하면 나도 불행한 것입니다. 경쟁을 해서 이기는 것이 행복이 아니고 서로 돕는 공생이 행복입니다. 환경 문제도 연기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해야 본질적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서양의 대증요법(對症療法)은 문제가 발생해야 답을 찾습니다. 그래서 근본적인 답이 안 나오고 있죠.”

남의 변화보다 내 행복이 중요

-불교에 대해 일반인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어떤 게 있습니까.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 지금 고통 받는다는 식의 인연법 해석은 인도 전통사상적 해석이지 불교적 해석이 아닙니다. 인간의 운명은 전생에 의해 정해져 있다거나 또 사람이 죽으면 개가 됐다 소가 됐다 하며 윤회한다는 믿음도 인도 전통 사상일 뿐 입니다.”

-왜 그렇게 됐습니까.
“우리가 아프리카에 가 불교를 포교하면서 김치를 담가 먹는다면 현지인이 보면 김치는 절에 가면 먹을 수 있으니까 불교 음식으로 인식될 것입니다. 사천왕상이나 만(卍) 자도 인도의 전통문화 요소입니다. 화장도 인도식 장례법일 뿐 입니다. 불교가 전래되면서 함께 온 것이지요. 태풍이나 지진으로 사람이 많이 죽었을 때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서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운명론이지 불교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고통 받는 사람이 있으면 내 형제가 아니더라도 내 재산이라도 나눠서 그들을 구제하라는 것입니다. 그들과 내가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님의 책을 읽거나 설법을 듣고 인생 문제 해결에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남편의 음주 때문에 괴로워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술 먹는 것은 나쁘다. 나쁜 것은 고쳐야 된다. 그래서 고치라고 했는데도 안 고친다. 그러니 내가 괴로울 수 밖에 없다는 등식이지요. 그런 경우 나는 묻습니다. ‘술 먹지 말라고 지금 내가 한 번 더 말한다고 고쳐지겠습니까. 두 번 말하면 고쳐지겠습니까. 열 번 말하면 고쳐지겠습니까’. 30년 말해서 안 고친 사람이 한 번 더 말한다고 해서 고쳐질 리가 없습니다. 말을 안 듣는 남편만 고집이 센 것이 아니라 안 들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술 먹지 말라고 하는 나도 고집이 센 것입니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선악관을 따르면 내 고집은 고집이 아닌 게 됩니다. 나는 항상 선하니까요.

이 문제의 해결은 간단합니다. ‘남편이 술 먹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할 게 아니라 ‘우리 남편에게 술은 보약입니다’라고 기도하라고 합니다. 어차피 남편은 술을 먹습니다. 먹는 것을 먹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니 내가 괴롭습니다. 그 생각을 놓으면 내가 괴롭지 않게 됩니다. 대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생각이 잘못된 거죠. 술을 먹고 안 먹고는 남편의 인생입니다. 남편을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술 먹지 말라는 말로 스트레스를 주면 오히려 술을 더 먹게 되지요. 책망할 게 아니라 술 먹은 남편의 등을 두드려 주고 위로해 주는 게 낫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실제로 실험을 해보면 ‘술을 더 먹으라’고 하면 대부분 남편들이 예상과 달리 술을 덜 마십니다. 아내에게 받는 스트레스가 줄면 준만큼 술을 덜 먹지요. 술 때문에 만날 싸우면 나도 남편도 괴롭죠. 어떻게 자기 인생을 주어진 조건에서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인생의 올바른 이치를 알게 되면 조금씩 변합니다. 복을 빌지 않아도 인생이 좋아집니다. 이치를 이해하면 삶이 변화하고 가족이 화목해집니다. 어떻게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하나하나 터득해 나가면 삶에 기쁨이 생기고 희망이 생깁니다.”

-나쁜 인연, 좋은 인연이 따로 없습니다.
“인연에는 좋은 인연, 나쁜 인연이 따로 없습니다. 주어진 인연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좋은 인연이 되기도 하고 나쁜 인연이 되기도 합니다. 인연이 좋게 되고 나쁘게 되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지 상대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와줬는데도 고마워하지 않고, 돌아오는 게 아무것도 없으면 배은망덕하다고 상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기대심이 없으면 배은망덕도 없습니다. 나를 행복하게 하려면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나에게 이익이지요.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