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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의 꿈] 1. 혼란 뒤 숨은 열정… 멕시코시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정열과 야성의 소설가 박영한씨가 지난 6월 26일부터 7월 5일까지 멕시코 작가협회와 쿠바 작가예술가동맹 초청으로 멕시코와 쿠바를 둘러보고 왔다.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 기획.후원으로 소설가 이청준, 시인 황지우, 문학평론가 장경렬.고혜선(단국대 스페인어문학)교수와 함께다. 박씨와 그 일행의 눈에 비친 중남미의 삶과 문화, 정열과 좌절의 현장을 5회에 걸쳐 싣는다.

나는 지금 뒤죽박죽으로 범벅된 죽통의 시간 속에 앉아 있다. 바로 엊그제 우리 일행은 멕시코를 떠나왔으며, 지나쳐온 시간들은 멕시칸 음식의 새콤하고 비릿한 소스 냄새를 풍기며 역류하면서 서울 평창동 작업실 앞 단풍나무 그늘에 앉은 나를 두루뭉수리로 후려때리고 있다.

멕시코시티 소칼로 광장의 혼잡스러움과 정복자 코르테스의 후예들이 땅 속에다 매장시켜버린 그 위대한 아즈텍의 유산들.

광장의 인기를 한몸에 받던 하얀 페인트 얼굴의 어릿광대 사내, 우둘투둘한 보도블록이 깔린 메리다 거리를 달려가는 무지막지한 버스의 소음과 칸쿤 해변의 으리뻑적지근한 리조텔과 호텔들. 입을 딱딱 벌리게 하던 마야유적지의 신전들과 눈부신 태양빛. 포르테로만 치닫던 스페인어의 강렬하고도 숨가쁜 억양.

'뜨로삐까나' 의 밤을 황홀로 적시던 물라토계 무희들의 발가숭이 몸뚱이들. 아바나 뒷골목의 시클로에 버티고 앉아 그 나라의 주인 행세를 해보던 치기. 떠나기 전 광화문의 소극장에서 본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의 콤바이와 세군도의 노래들이 지금 아바나 뒷골목의 냄새 지독한 풍경들과 뒤엉켜 나를 카오스 속으로 몰아대고 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잠시 머문 샌프란시스코에서 멕시칸으로 오인받아 세관원에게 압수당한 가방 속에는 소중한 메모첩이 들었건만 유나이티드 항공사에서는 아직껏 가방을 찾았다는 연락이 없다.

그날 공항에서의 빌어먹을 선글라스 때문이다. 눈썹도 짙은 데다 그걸 끼고 있었으니 혼혈족 메스티소라고 오해받기 딱 좋았겠지.

그렇다면 차라리 이 혼란을 혼란인 채 그대로 고백하기로 하자. 그래. 내 속에서 죽 끓듯이 들끓고 있는 이 혼돈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줌으로써 저쪽 나라들의 사정을 오히려 더 생생한 날것 그대로 전해줄 수 있지는 않을는지.

멕시코시티는 우아함과 구질구질함, 부유함과 빈곤, 포스트모더니즘과 전통주의와 모더니즘이 혼재된 시끄럽고 한편 고즈넉하기도 한 기괴한 도시였다. 멕시코는 우리나라처럼 단수(單數)의 얼굴을 가진 나라가 아니다.

그리고 당연히 멕시코를 이해한다는 일은 곧 이 나라의 복잡한 역사를 이해하는 일과도 일치한다. 스페인의 정복자 코르테스가 상륙한 5백년 전까지 멕시코 땅은 비교적 분명하고도 선이 쪽 곧은 얼굴을 하고 있던 나라였다. 그때껏 이 땅에서 만개했던 선진적인 문명은 스페인의 상륙 이후 급작스레 시들었다.

그 피 튀기면서 몸부림치며 흘러간 역사의 퇴적물들은 산발적으로, 그러나 우리 피부에 와닿게 이 나라 땅 곳곳에 아직껏 남아 있다. 파괴와 살육이 저질러진 뒤 5백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마야족의 후예들이 그들의 언어를 버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잘 뒷받침해 주고 있다.

멕시코로 떠나기 전까지 나는 그때껏 멕시코시티의 외관에 대해 한 번도 제대로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올해 처음으로 부임해간 학교에서 학생들의 기말성적을 처리하고 방학을 맞자마자 부랴부랴 짐 보따리를 챙겨 공항으로 달려가야 했기 때문이다.

밤 늦게 도착한 멕시코시티의 야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옥타비아 파스라던가, 아니면 네루다라던가. 기억이 분명치 않지만 하여튼 그들 중 누군가가 멕시코 시티의 야경을 일러 '무수히 영롱한 다이어몬드 목걸이' 라 극찬한 적이 있다고, 우리 일행의 셰르파로서 스페인어에 능숙한 고혜선 교수가 귀띔해준다.

청년기에 참전병으로 베트남에서 2년 간을 보낸 이후로 해외로 나간 일은 이번이 처음이라, 다른 나라의 야경을 보는 일 역시 내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밤 늦게 도착해서 셰라톤 호텔에서 하루 묵은 우리는 멕시코 작가협회 쪽에서 마중 나온 에우헤니오 아기레의 인도를 받아 코요칸 마을 '작가의 집' 에다 짐을 풀었다. "햐아, 호텔보다 백번 낫네. 진작 이런 방을 줄 일이지" "정말 끝내주는 집인데" 하고 우리는 한 마디씩 내뱉었다.

이 나라 작가협회에서 운영한다는 '작가의 집' 은 스페인풍의 고옥(古屋)으로, 둥글게 지어 올린 2층 건물 한가운데 마당이 있어 호젓한 느낌을 준다.

방바닥이며 벽에서는 이 나라 고유의 흙빛이 나고 방방의 기물들엔 오랜 손때가 묻어 있어서 정겹기까지 했다. 탁자.의자.장롱, 하다못해 자그만 장식품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나뭇결이 드러나고 칼 스친 거친 자국이 선명한 수제품들이어서 간밤 우리가 자고 나온 호텔의 방들과는 썩 대조적이었다.

1500년대 스페인 식민지 시절 지배계층 사람들을 위해 설계되었다는 코요칸 마을은 집집이 유럽풍으로 우아하고 고풍스런 때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주(主)도로에서 옆으로 흘러 빠지는 샛길에는 시멘트나 아스팔트 대신 검정 돌멩이가 박혀 있어 자동차가 몹시 뒤뚱거렸다.

집집의 낡아빠진 목재 건축자재며 문고리.벽.창문 등에서는 현대풍의 매정하고 칼 같은 엄격한 자취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수백 년 묵은 집들인데도 개축을 하지 않고 그대로 두어서 남의 집 대문간의 거친 나뭇결을 만지고 문고리 장식을 흔들어보는 일만도 감개무량이었다.

그날은 한국대사관으로부터 저녁을 한턱 대접받는 날이었다. 방금 지나쳐온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거리 풍경을 떠올리며, 식사가 날라져 오기 전에 나는 슬며시 자리를 떴다. 멋들어지게 치장한 홀마다 상류층 남녀들이 가득 차지하고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대개 스페인계 백인들이었고 인물들이 번듯번듯했으며, 고급스런 의상으로 몸을 감싼 여자들은 서양영화에서의 파티장 장면 장면들을 훌륭하게 재현해내고 있었다.

IMF외환위기를 우리네보다 수년 전에 먼저 겪었으며 정치.경제적으로 몹쓸 어려움에 처해 있다던 멕시코의 어느 구석구석에서 이토록 우아한 귀족들이 한꺼번에 튀어나왔단 말인가□ 으리으리하며 수천 평은 되는 듯한 여기가 소위 그 옛날 영주(領主)의 장원(莊園)을 개조해 만든 그 유명한 고급 음식점이란 말인가□

바이올린.첼로를 연주하는 소리가 흘러나오는 어떤 홀을 엿보았더니 대강당만큼 넓은 실내에서 금발.은발의 선남선녀들이 한창 칵테일 파티를 벌이던 중이었다. 출입구로 나가보니 군데군데 축제의 횃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고급 승용차들이 줄을 이어 몰려 들어오고 있었고, 할리우드의 일급 배우 비슷한 남녀들이 무더기로 몰려서서 축제의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눈치로 때려잡아본즉 낮에 어딘가에서 최상류층 자제분의 결혼식이 있었던 모양인데, 그 피로연을 이토록 성대하게 하는가 보았다.

멕시코시티의 동부지역에서는 빈민들이 득시글거리고 외국인 관광객이 멋모르고 거기 발을 들여놓았다가는 어느 참에 옆구리로 총구가 들이밀어질지도 모른다는데, 이 우아한 사람들이 수도 한복판에서 지상최대의 파티를 벌이며 이토록 희희낙락해도 이 나라는 뒤집어지는 일이 없단 말인가? 그래서 부자들의 천국이란 말이지.

만약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노조(勞組)와 왼팔 취향의 인터넷 사이트와 삐딱한 입을 가진 언론이 가만두고 보겠는가 하는 것이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른 의문이었다.

박영한 (소설가.동의대 한국어문학부 교수)

사진=황지우 (시인.한국 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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