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교수 알고보니 고졸 '벨보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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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호텔 벨보이를 하던 고졸 미국인이 가짜 박사학위로 국내에서 1년6개월 동안 대학교수 생활을 하다 경찰에 적발됐다.

뉴욕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M씨(34). 그는 맨해튼 T호텔의 벨보이로 일했다. 교제하던 한국 여성과 2000년 11월 입국한 뒤 결혼한 그는 일자리를 찾다 지난해 4월 서울의 모 사립대학이 영어로 강의할 수 있는 1년 계약직 교수를 모집하자 가짜 학위증으로 응모했다. 태국인 브로커를 통해 위조한 미국 컬럼비아대 석사(영어교육학)학위였다.

M씨는 이 대학 경영학과에서 지난 2월까지 기업영어 를 강의하고 2400여만원을 받았다. 이어 지난 3월엔 영문학과 조교수 공개 채용 때 센트럴미시간대의 가짜 박사학위증을 내 당당히 교수에 임용됐다.

그는 서류전형에서 응시자 가운데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영어회화 4개 강좌를 맡아 그동안 월급.연구비 등으로 6800여만원을 챙겼다. M씨는 유명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면 연구비 500만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 착안, 인터넷에 가짜 학술지 사이트를 만들기도 했다. 유명 학술지 사이트와 비슷한 이름의 사이트를 만들어 다른 사람의 학술 논문을 편집해 자신의 논문인 것처럼 게재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는 1500만원을 타냈다.

그러나 M씨가 인터넷에 논문을 너무 자주 게재하자 동료 교수들이 의심했다. 결국 학교 측이 논문이 게재된 학술 사이트가 가짜인 사실을 확인했고, 경찰에 고발했다. 경찰 관계자는 "외국인 교수 채용 심사 과정의 허점이 드러난 것"이라며 "비슷한 사건이 있는지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대학 관계자는 "M씨가 제출한 학위증을 근거로 미국 대학에 학력 조회 요청을 했으나 제대로 회답받지 않고 그대로 믿어버린 게 실수였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M씨의 아내도 그가 고졸 학력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경찰청 외사과는 8일 M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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