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급락 배경과 전망] 국내기업 수출 영향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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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이 예상보다 가파르게 떨어지자 기업들도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대기업들은 타격이 상대적으로 작지만 중소기업들은 가격경쟁력이 약화돼 울상이다.

기업들의 올해 환율운용 계획을 보면 수출에 주력하고 있는 기업들의 경우는 1050~1070원으로 예상보다 불리하게 잡았고, 수출 비중이 크지 않은 경우는 1100원대로 다소 여유있게 잡은 것이 특징이다.

삼성전자는 달러당 원화 가치가 100원 오르내릴 때마다 1조2000억원의 매출 차이가 난다. "하지만 올해 경영계획상 평균 환율을 1050원으로 매우 보수적으로 잡았기 때문에 아직까진 별 영향이 없다"고 회사 관계자는 밝혔다. 2002년 1150원, 지난해 1100원 등으로 그동안 실제 환율 대비 100원 정도 불리하게 설정해 환율 하락에 대비해왔다는 것이다. 게다가 가전제품의 경우 해외 생산비중이 물량 기준으로 80%에 달해 환율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설명이다.

평균 환율을 1110원으로 잡은 LG전자는 환율 하락세가 빨라지자 유로화 결제 비율을 늘리고 달러화 예금을 줄이고 있다. 또 가격 경쟁을 안 해도 되는 프리미엄급 제품 비중을 더욱 늘려가기로 했다. 이른바 '환리스크 증폭에 따른 시나리오'경영이다.

현대차는 올해 예상 환율을 1070원대로 잡아 아직 여유가 있는 편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달러 가치 하락세보다 유로화의 강세가 가파른 게 우리로선 다행"이라고 말했다. 현대차의 미국 수출비중은 42.7%이고 유럽 수출비중은 30.4%인데 유럽 쪽 수출의 비중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문제는 경쟁력이 약한 수출형 중소기업이나 한계 기업들이다. 대한상의가 수출기업 321곳을 조사해 8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84%가 최근의 환율 급락이 부정적이라고 응답했다. 또 중소기업들의 경우 1050원 수준을 감내할 수 있다는 응답이 전체의 4%에 그쳤다.

무역연구소 신승관 연구위원은 "최근 환율 하락으로 수출기업의 40% 정도는 투입 비용조차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며 "대다수 무역업계는 정부가 인위적인 개입을 해서라도 환율 급락세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의견"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유.철강.항공.해운 등은 원화 강세로 이득을 보는 입장이다. 고유가로 고통받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항공운송업계는 특히 한숨을 돌리고 있다. 항공기 구매로 외화부채가 많은 대한항공은 원화가치가 10원 높아질 때마다 509억원의 환차익을 본다. 항공유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항공유 부문에서도 환율 10원 하락당 89억원의 영업비용이 줄어든다.

연료비 수입 비중이 크고, 달러부채가 많은 한국전력도 원화 가치가 1% 상승할 때마다 실적이 2.5% 정도 좋아진다고 했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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