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의 유혹 … 펀드환매 러시 언제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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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사흘간(2~6일) 1조3000여억원이 빠져나갔다. 이에 놀란 자산운용사들은 환매 특별대책반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시장에선 대규모 환매에 대한 의견이 엇갈린다. 대세는 ‘환매 대란’보다 ‘지나친 기우’ 쪽으로 쏠리고 있다.

펀드에서 이처럼 돈이 빠져나가는 데는 원금 회복에 다가선 투자자들이 펀드를 판 게 가장 큰 이유다. 2007년 당시 1700~1800대에 펀드로 유입된 자금은 5조원으로 추산된다. 최근 주가가 1720을 넘어서자 이 자금 중 일부가 원금 회복에 나선 것이다. 또 1500~1700대를 오가는 박스권 장세에서 지금의 증시가 박스권 상단에 왔다고 판단한 투자자들이 차익 실현을 나선 것도 환매 급증의 이유로 꼽힌다.

IBK투자증권 김순영 연구원은 “1800대에 들어간 돈도 9조4000억원 정도로 추산되는 만큼 강도는 약해질 수 있겠지만 상반기까지 펀드 환매는 지속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펀드환매가 지속돼도 이게 주식시장의 방향을 결정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원금 회수를 위한 매물인 만큼 지수를 거꾸러뜨릴 만한 악재로 보기는 힘들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전망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변수는 외국인이다. 외국인은 지난달 이후 6조8000억원을 순매수했다. 이 기간 국내 주식형 펀드 순유출액은 3조원을 기록했다. 펀드 순유출액이 적지 않았지만 이보다 배 이상 많은 외국인 자금이 밀려들며 주식시장을 끌어올린 것이다.

하나대투증권 곽중보 연구원은 “저금리 기조 속에 돈이 많이 풀리다 보니 외국인의 투자 여력은 충분하다”며 “외국인 매수세가 펀드 환매에 따르는 매물을 소화해 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이후 주식형 펀드에서 11조1000억원의 자금이 빠져나갔지만 외국인의 ‘바이 코리아’에 힘입어 코스피가 50% 넘게 상승했다.

똑똑해진 투자자의 움직임도 이러한 분석에 힘을 싣고 있다. 2007년과 2008년의 증시 급등과 급락을 경험한 투자자들이 주가가 오르면 환매하고, 주가가 내리면 펀드에 투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환매 때문에 주가가 떨어지면 싼값에 주식을 사모으기 위한 투자자가 또 나타난다는 얘기다.

현대증권 이상원 연구원은 “2월 지수 조정기에 국내 주식형 펀드로 자금이 들어온 것을 감안하면 주가 조정 시에 대기성 매수세도 존재하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펀드 환매 대열에 나선 1700~1800대 유입 자금 중 증시상황에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적립식 펀드가 53%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낙관론의 근거다. 적립식 펀드가 많은 만큼 대량 환매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난해 9월과 10월 지수가 1720선을 돌파할 때도 대량 환매가 발생했기 때문에 환매 압력은 약화됐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주가 움직임에 따라 환매 심리도 급격하게 변할 수 있다. 주가가 1700선대에서 밀려나거나 주가가 급등하면 환매가 줄어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곽중보 연구원은 “주가가 1800을 넘어서면 기대감이 커지면서 환매는 줄고, 오히려 자금이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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