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7년 만의 연애소설 “욕망 다 드러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소설가 박범신(64·사진)씨가 간만에 연애소설을 냈다. 장편 『은교』(문학동네)다. 올 들어 인터넷 개인 블로그에 한 달 반 연재했던 ‘살인 당나귀’의 이름을 바꿔 출간했다. 박씨는 7일 “젊은 날 연애소설만 쓰고 살았던 박범신이 17년 만에 연애소설 낸 거다”라고 말했다. 17년 전 마지막 연애소설은 나중에 책으로 묶여 나온 장편 『외등』을 말한다. 박씨는 이 소설을 한 일간지에 연재하다 1993년 절필선언과 함께 중단했었다.

박씨는 소위 ‘호스티스 소설’이란 신조어를 유행시킨 최인호와 함께 1970, 80년대 문학의 대중화를 이끌었던 대표적인 작가다. 70년대 말 출세작인 『죽음보다 깊은 잠』은 여주인공이 은사가 포함된 일련의 남성들과 차례로 관계를 맺는 통속적인 설정 안에 당시 사회에 만연한 신분상승 욕구를 담아 냈다. 『불의 나라』 등 후속작도 수 십 만부씩 팔렸다. 절필 이후는 말하자면 예술성으로의 복귀. 박씨는 한때 삭발까지 해가며 ‘진지한’ 작품에 매달려 왔다.

통속과 예술이라는 양극단을 두루 경험했기 때문일까. 읽기 나름이겠지만 박씨의 새 소설은 감각적인 연애소설만도 아니다. 세 주인공은 일흔의 노시인 이적요, 그가 사랑한 열여덟 살 처녀 한은교, 이적요의 집사 역할을 하는 오십 대의 베스트셀러 소설가 서지우 등이다. 사제지간인 이적요와 서지우 간에는 결코 공개돼선 안될 비밀이 있다. 서지우의 소설이 실은 문재(文材)가 떨어지는 제자를 위해 이적요가 대신 써준 것이다. 하지만 소설이 성공하자 둘 사이에 미묘한 갈등이 싹트고 결국 은교를 둘러싼 애증관계로 발전한다.

어찌보면 일종의 치정극이다. 연애소설 시절 박씨 특유의 노골적인 성애 묘사, 매혹이 사랑을 부르는 과정 등이 실감나게 그려진다. 여기에 소녀 집착증인 롤리타 콤플렉스, 부자 갈등으로도 비치는 두 남자의 대립, 통속과 예술을 구분 짓는 평단에 대한 통박 등 다양한 감상 포인트를 갖췄다.

박씨는 “연애소설을 쓰려고 했는데 생로병사에 관계된 존재론적 소설, 혹은 예술가 소설이 된 것 같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또 “다양한 층위의, 나 자신의 갖은 욕망을 다 드러냈다”고 했다. 말끔히 드러나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감출 게 없다는 것이다. 17년 간 스스로 채운 사슬을 풀고 붓 가는 대로 썼다는 얘기로 들렸다. 소설은 전자책(디지털교보문고)으로도 나왔다. 종이 책의 60% 가격인 7200원에 살 수 있다.

신준봉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