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리뷰] '드니즈 르네와의 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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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저명한 화랑경영자로 '현대 추상미술의 전도사' 라는 평가를 받는 드니즈 르네의 삶과 생각을 담은 이 책을 통독하면서 다가오는 느낌은 명쾌하다.

"역시 큰 화상(畵商)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하는 감탄 말이다.

분명 그림을 파는 장사는 장사이면서도 반세기 넘는 기간 동안 자신이 견지해온 미학적 입장을 투쟁하듯 관철해온 의지와 자부심이 놀랍다.

따라서 상업적 이익을 먼저 내세웠더라면 르네에게 오늘의 명성이 있었을까 묻는 자체가 그에게는 모욕으로 들릴 것이 분명하다.

"내 친구가 나를 정의한 말이 있는데, 그는 '드니즈 르네는 장사꾼이 아니다. 그녀는 투사다' 라고 했어요. 나는 전진하고 설득하고 이끌고 싶었습니다. 나는 내 진로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작가와 나는 말 그대로 아방가르드(前衛)였어요. " (74쪽)

오연함에 가까운 당당함이 뚝뚝 묻어난다. 실제로 오래전 근거지를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긴 르네에게 미국의 신문기자들도 그의 오만한 성격을 자주 공격했다고 하지만, 책의 전체 분위기는 이런 식의 '유쾌한 당당함' 으로 일관한다.

책은 대화록. 미술전문지 '아트 프레스' 의 편집장 카트린 미이예가 묻고 르네가 답을 하는 방식으로 서술돼 있다.

그러면 르네는 누구인가? 그는 '현대미술을 움직이는 대표적인 인물' . 올해로 90세가 다된 고령임에도 살아 있는 문화권력으로 평가받는 그는 미술사전에 표제어로 이름이 올라 있을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현대추상미술이라는 미술운동의 연출자로 유명한 그는 1944년 화상으로 출발했다. '현대미술과 결혼한' 그가 얼마전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과 퐁피두센터가 공동기획한 전시를 헌정받았던 것도 프랑스다운 문화풍토에서 맺은 멋진 이벤트다.

한 화상에게 그만한 전시를 국가 전시기관에서 봉헌 한 것이다. 문제는 그 전시의 이름이 '불굴의 드니즈 르네전(展)' . 그녀를 투사라고 한 것도 근거없는 찬사가 아니었음을 실감케 하지만, 이런 면목은 책에서 거듭 확인된다.

그는 "나의 주요 목적은 언제나 화랑이었고, 나는 나의 삶의 방식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없었지요" 라고 말한다. 그런 르네에게 다른 화상과의 교류 내지 연대를 묻자 이런 '도도한 답변' 을 한다. "나는 그들과 아무런 공통점도 느끼지 못했지요. 나는 그들의 직업에 대한 생각이나 예술적 안목면에서 다른 별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런 르네는 독신에 신장 150㎝의 단구(短軀). 워싱턴에서 가진 한 연설에서는 맥주박스에 올라서 했을 정도였다고 하지만, 세월이 자신의 몸과 마음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공언한다.

이 책은 전문직에 관심있는 여성이나, 현대미술 전공자들이 읽어봄직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책은 친절한 편이 아니다.

현대미술이라는 공간과 정보에 대한 상당 수준의 정보를 전제로 대화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번역도 요령있게 잘됐다 말하기는 힘든 편이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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