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 여자에 대한 환상이 산산이 깨질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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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발
아네스 드라르트 지음, 조현실 옮김, 신민재 그림
문학과지성사, 83쪽, 8000원, 초등 3학년부터

“어떤 여자가 공주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다. 발을 잘 살펴보면 된다. 공주는 발이 특별히 예쁠 테니까.”

주인공 이반은 동화 속 공주를 동경하는 열살의 사내아이다. 이 소년에게 어느날 기회가 찾아온다. 엄마가 갑자기 일을 나가게 되면서 이웃의 모리세트 할머니 집에 맡겨지게 된 것이다. 할머니의 직업은 발 관리사. 공주들은 신데렐라처럼 예쁜 발을 갖고 있을 거라고 믿고 있는 소년은 드디어 공주를 찾아낼 수 있게 됐다는 생각에 들뜬다.

하지만 막상 발관리사의 조수가 돼 맞은 손님의 태반은 노인들. 게다가 구두 속에 감춰진 온통 뒤틀리고 상한 발은 차마 사람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사춘기 소년의 꿈은 무참히 깨진다.

그러나 환상이 깨진 자리에는 어느덧 새로운 여성상이 들어선다. 볼품없는 모습의 모리세트 할머니에게도 젊은 날의 꿈과 애틋한 사랑의 추억을 가진 여성의 모습이 숨겨져 있었고, 축구를 좋아하는 선머슴 같은 여자 아이 이렌에게도 건강한 여성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사실 ‘이성에 대한 환상’은 비단 아이들만의 것이 아니고 무조건 나쁘다고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요즘 TV 드라마 등을 통해 끊임없이 주입되는 현대판 왕자와 공주의 이야기들은 이성에 대한 건강한 긴장감을 넘어 이상적인 남녀에 대한 고착된 관념을 심어 줄 우려가 크다. 다른 사람을 남녀와 나이, 아름다움과 추함으로 구분하기에 앞서 나와 같은 인간으로 보라는 책의 메시지는 이 때문에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의미가 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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