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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나른한 봄 원기 충전, 소설이 묘약이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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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예수를 건드리다 그런데 유쾌하게

예수를 부탁해요, 폼포니오
에두아르도 멘도사 지음
권미선 옮김, 민음사
218쪽, 1만원

문학이 다루지 못 할 세계는 없다. 신들의 세계조차 문학은 제 멋대로 드나든다. 이를테면 ‘신성불가침’이란 말은 문학에 허용되지 않는다. 문학이란 언어를 무기 삼아 온갖 세계를 넘보는 우아한 테러리스트다. 이 소설은 그런 문학적 호사를 맘껏 누린다. 인류 역사상 가장 민감한 소재에다 도발적 상상력을 내지른다. 스페인 소설가 에두아르도 멘도사는 예수의 생애를 침범하기로 했다. 성경에 없는 예수의 유년기를 타깃으로 삼았다. 심오한 종교 소설 아니냐고? 아니다. 이 소설에서 예수는 나사렛의 순진한 꼬마 녀석이다. 인류의 구원자는커녕 살인 사건에 휘말려 발을 동동 구르는 사내 아이에 불과하다.

소설이 예수의 생애를 침범하는 방식은 이처럼 엉뚱하다. 민감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성경과 신화, 고대 역사를 발랄하게 엮어낸다. 가상의 인물과 역사 속 인물이 두루 섞였는데, 마치 실재한 이야기를 들려주듯 능청을 떤다.

소설은 폼포니오 플라토라는 로마 철학자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글이다. 폼포니오는 영험한 물을 찾아 세상을 떠돌다 우연히 나사렛에 당도하는데, 때마침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예수의 아버지인 요셉이 에풀론이란 부자를 살해한 범인으로 몰린다. 어린 예수는 폼포니오에게 아버지의 누명을 벗겨줄 것을 부탁하고, 폼포니오와 예수의 좌충우돌 수사가 시작된다.

이 소설의 가장 강력한 동력은 유머다. 아니, 유머 대신 익살이라고 하자. 고대 신화와 성경을 교묘하게 패러디하며 재치있게 소설을 풀어간다. 소설 곳곳엔 성경 속 이야기가 짜깁기돼 있는데, 스토리 전개와 딱 맞아 떨어지면서 묘한 웃음을 자아낸다. 이를테면, 수사 단서를 찾기 위해 담벼락에 오른 예수가 무화과 나무에 걸려 떨어지는 장면. 꼬마 예수가 말한다. “빌어먹을 무화과 나무! 너는 절대 열매를 맺지 못할 거다.”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을 다룬 마태복음(21장19절)을 패러디한 대목이다. 죽은 줄 알았던 에풀론이 사흘만에 돌무덤에서 나온다거나 마태·요한·나사로 등이 사건에 얽히는 모양새도 성경 속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하나 애초부터 역사적 사실은 저자의 관심 밖이었다. 이 소설은 작심하고 예수를 ‘오해’하고 있다. 성모 마리아 등 예수의 가족조차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실재와 가공을 적절히 넘나들며 종교·역사에 덧씌워진 인간의 탐욕과 갈등을 유쾌하게 그려냈다. 문학에서 오해란 가장 적나라한 이해일 수 있음을, 이 소설은 입증하고 있다.

정강현 기자


고양이에 관한 11가지 묘한 상상

캣캣캣
태기수 외 지음, 현대문학
348쪽, 1만2000원

그렇다. 지금은 고양이 시대다. 길강아지는 드물어도 길고양이는 널렸고, ‘디시인사이드’의 ‘멍멍이’ 갤러리보다 ‘야옹이’ 갤러리가 더 번성할 만큼 애묘인이 넘친다. 고양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써내라는 주문을 받은 11명의 젊은 작가들이 제각각 상상력을 펼쳤다. 현대문학이 창간 55주년을 기념해 낸 두번째 소설집이다.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들은 ‘고양이를 기른다’고 쉽게 말하지 못한다. 그냥 고양이와 같은 공간에서 살 뿐이라서다. 주인에게 순종하긴커녕, 도도하고 독립적인 동물. 박형서의 ‘갈라파고스’는 그런 고양이의 특성을 극대화한 단편이다. 주인공은 우연히 집에 들여놓은 고양이 ‘성범수’에게 시계와 옷을 뺏기고, 나아가 친구도 집도 내어주고 쫓겨난다. 그 모든 것이 진화의 결과라는 듯 다윈의 진화론이 태동한 섬 ‘갈라파고스’를 제목으로 붙였다. 태기수의 ‘모르모트 인간’은 사람을 감시하는 듯한 사장실 고양이의 눈초리가 거슬려 해코지를 했다가 엉뚱하게도 쥐의 꼬리를 갖게 되는 사내 이야기다. 고양이를 두려워하는 쥐 꼬리 인간. 그러나 꼬리를 성적 쾌락의 도구로 활용하는 법을 터득하면서 반전이 일어난다.

김설아의 ‘고양이 대왕’에선 상사의 잘못을 뒤집어쓴 아버지가 회사 ‘갱생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고양이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갱생 프로그램이 실패했다’며 해고 통보를 받고, 길고양이로 전락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으려 ‘회사형 인간(고양이)’이 되지만, 쓸모가 다해 버려진 후엔 인간다움을 되찾을 길이 없는 월급쟁이들의 비애를 상징하는 듯하다. 명지현의 ‘흙, 일곱마리’의 주인공은 진흙으로 빚은 인간이다. 불사의 진흙 인간은 전쟁터에 투입돼 살상 기계로 이용된다. 이들은 자신의 몸을 새로 반죽해 고양이의 형체를 빚고, 감옥의 창살을 빠져나가 자유를 얻는다. 길고양이를 퇴치하려는 인간들의 움직임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반성하게 하는 최은미의 ‘수요일의 아이’도 독특하다. 수세에 몰린 고양이와 ‘비염인’을 동일시하며 이야기에 얽어내는데 황당하면서도 그럴싸하다. 고양이는 등장시키지 않고, 그 이미지만 빌려온 김서령의 ‘캣츠아이 소셜 클럽’도 흥미롭다. 인터넷 블로그에 공개된 조작된 이미지와 자신의 실체 사이의 괴리가 커지면서 몰락해가는 인물을 그렸다. 그걸 알면서도 방관하고 이용하는 시스템, 남의 불행을 디딤돌 삼아 제 몫을 지키는 인간의 비겁함까지 아우른 작품이다.

책엔 때론 섬뜩하고, 때론 유머러스하고, 때론 비장한 이야기가 오묘하게 얽혀 있다. 영물이라는 고양이는, 작가에겐 영감을 불어넣는 동물인 모양이다.

이경희 기자


연서 대필 벤처라 … 엉뚱 발랄 이 청년

연애편지의 기술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오근영 옮김, 살림
384쪽, 1만2000원

편지 한 통으로 전 세계 여성들 누구나 유혹할 수 있는 자신만의 ‘초절정 기술’을 개발해 연애편지 대필 벤처회사를 차리겠다는 야무진 꿈을 꾼 젊은이가 있다. 주인공은 노토 반도의 바닷가 연구소에서 해파리의 생태를 연구하는 대학원생인 모리타 이치로. 지도교수가 “사자가 자기 새끼를 낭떠러지에서 떨어뜨려 강하게 키우듯” 외딴 연구소로 보냈는데 그는 이처럼 엉뚱한 꿈을 꾼다. 진지하게.

소설은 그 모리타가 교토 대학원 친구인 고마쓰자키, 선배인 오쓰카 히미코, 예전에 과외를 가르쳤던 초등학생 마미야, 여동생 가오루 등에게 보낸 편지를 묶은 형식이다. 서한소설이란 독특한 형식이지만 여러 사람에게 보낸 편지가 겹쳐지며 읽을 수록 상황이 눈에 들어온다. 결국 ‘벤처회사’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지만 유쾌한 이야기 전개는 슬며시 웃음이 나오게 한다.

모리타는 고마쓰자키에게 좋아하는 여자에게 꽃을 선물하라 조언하지만 그 연인 사에구사 마리코는 카네이션 알레르기가 있어 소동이 벌어진다. 또 선배 오쓰카에게 자기가 짝사랑하는 이부키 나쓰코의 정보를 캐내다가 놀림을 당한다. 그리고 작중 인물로 등장한 작가 모리미 도미히코에게는 연애편지 잘 쓰는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조르던 끝에 오히려 자기 글을 도용당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마냥 가볍기만 한 것은 아니다. 동생 가오루에게 “주의해야 할 것은 설사 본질을 꿰뚫고 있다고 해도 노골적으로 그걸 꼬집어서는 안 된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본질을 찌르는 것”이라 일러주는 대목이 그렇다.

절정은 이부키에게 부치지 못한 ‘실패한 서간집’이다. “…맑은 영혼과 우람한 근육과 의사소통 능력. 이 삼박자의 신기(神器)가 반드시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해 놓은 편지에는 “자기를 내세우기에 급급한 나머지 심야의 통신판매 프로그램의 광고문구를 응용한 것이 잘못”이라는 반성이 따르니 말이다. “이런 쓰레기 벌레가 당신같이 재색을 겸비한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이 애당초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나의 볼품없는 문장으로 소중한 펄프자원이 낭비되고 지구온난화가 가속화하고…”란 편지를 쓴 뒤 “겸손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왠지 비굴한 인간이 되고 말았다”고 자탄하는 식이다.

지은이는 『밤은 짧아 걸어 이 아가씨야』에서 『요이야마 만화경』까지 다양한 색깔의 소설로 국내에서도 상당한 애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는데 신작에서도 솜씨는 여전하다. 그런데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거 아닐까.

“헛되이 사라진 연애편지 수만큼 사람은 성장한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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