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력 보상' 제의 속셈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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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이 미국의 북.미대화 재개선언 12일 만에 첫 공식반응으로 의제수정 제의를 한 것은 대화재개를 앞둔 북.미간 '기싸움' 이 본격화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 '미국식 틀로는 안된다' =북한이 이날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밝힌 내용 중 눈여겨 볼 대목은 두 가지다.

우선 '미국식 대화방식에 끌려다니지 않겠다' 는 점을 명확히 한 점이다.

북한은 향후 지루하게 진행될 북.미대화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 핵.미사일.재래식 무기 등 미국이 내건 3대 의제를 덥석 받아들이기보다 공세적 입장을 취할 수 있는 전력손실 보상을 들고 나온 것이다.

북한이 미국이 제시한 3대 의제에 대해 "일방적이고 전제조건적이며 의도에 있어서 적대적" 이라고 비난공세를 퍼부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와 함께 북한이 사실상 경제지원을 북.미대화의 첫 의제로 내세운 것은 현재의 경제난을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체제유지를 위해서는 극심한 경제난을 해결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북.미대화를 이용하겠다는 게 북한의 '속내' 라고 외교소식통들은 설명하고 있다.

◇ 지루해질 북.미 대화=이번 담화의 메시지 중 또 하나는 '미국과 대화는 하겠다' 는 것이다.

북한이 북.미대화 재개는 '유의할 만한 일' 이라고 밝힌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재래식 무기와 관련, "남조선에서 미군이 물러나기 전에는 논의 대상조차 될 수 없다" 고 강조한 것은 북.미대화의 첫 단추를 끼우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게다가 북측이 내민 전력손실 보상문제도 미측의 입장이 강경해 의제 선정을 둘러싸고 치열한 신경전이 예상된다.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 등 미 행정부의 당국자들은 "북한의 불량한 행동에 대해 보상하지 않겠다" 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강성윤(姜聲允)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미대화가 순탄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면서 "북한은 북.미대화가 어느 정도 정상궤도에 올라야 남북대화에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남북대화도 조기 재개를 낙관하기 어렵다" 고 전망했다.

이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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