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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피고인 한명숙 ‘제한적 신문’ 했지만 대답은 “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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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총리공관 오찬은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을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에게 소개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습니까.”(검찰)

“….”(한명숙 전 국무총리·사진)

“아들의 유학비가 부족하지 않았습니까.”(검찰)

“….”(한 전 총리)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는 1일 재판에서 검찰의 신문에 대한 진술을 거부했다. 전날 진술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밝힌 뒤 검찰과 변호인, 재판부가 격론을 벌인 끝에 검찰 신문이 이뤄졌으나 입을 열지 않았다. 200여 개에 이르는 질문이 이어지는 내내 그는 질문지와 정면만 바라봤다. 검찰이 법정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관련 자료를 제시할 때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이따금씩 연필로 무언가를 적곤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김형두) 심리로 열린 이날 재판에서 검찰은 전날 재판부가 실무지침서를 근거로 내린 ‘검찰 신문 생략’ 결정에 대해 다시 한번 반대 입장을 밝혔다. “검사의 신문권도 피고인의 진술거부권과 마찬가지로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은 2002년 일본 삿포로 고등재판소가 피고인이 진술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400여 개 문항에 이르는 검찰 신문을 허용한 사례를 그 근거로 제시했다. 반면 한 전 총리 측 백승헌 변호사는 “외국의 법률은 그 이론의 발전 과정부터 우리나라와 달라 이번 사건에 적용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재판장인 김형두 부장판사는 검찰의 설명 중간에 “정확한 법 조문을 보여 달라”며 날 선 반응을 보였다. 또 “일본 최고재판소도 아니고 고등재판소 판례를 가져오셨네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수사를 담당했던 서울중앙지검 권오성 특수2부장은 “검찰 신문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재판에 참여하지 못하겠다”고 항의했다. 결국 재판부는 “대답을 강요·유도하거나 모욕적이지 않은 질문에 대해서만 신문을 허용하겠다”고 결정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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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검찰 질문 내용 하나하나에 대해 변호인이 의견을 내고, 이를 다시 재판부가 판단하는 절차를 거쳤다. 20쪽 분량의 질문서를 고치는 데만 약 3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한 전 총리는 신문이 진행되는 한 시간 동안 침묵을 지켰다. 검찰 측은 “재판부가 일일이 고친 질문에도 한 전 총리가 답하지 않는 것은 진실을 숨기기 위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앞서 대검찰청은 이날 간부회의를 연 뒤 재판부가 검찰의 신문을 제한한 데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조은석 대변인은 “검사가 피고인을 상대로 질문조차 못 하는 재판은 있을 수 없다”며 “진술 거부는 피고인의 방어를 위한 것이지, 검사의 입을 막을 권리가 아니다”고 재판부를 겨냥했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재판이 시작될 때부터 계속된 불공정 게임이 도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재판 진행 중에 대검이 재판부를 비판하는 일은 극히 이례적이다. 권오성 부장도 이날 신문이 끝난 뒤 “중대한 사건이어서 원만한 진행을 위해 재판부 지휘에 협조했지만 검사의 신문권을 제한한 게 합당한 것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이에 대해 법원 관계자는 “소송지휘권은 전적으로 재판부에 있다”며 “검찰의 공개 반발은 지나친 느낌이 있다”고 했다.

◆“한 전 총리 아들 미국 은행 예금 확인해야”=검찰은 이날 한 전 총리 아들의 미국 유학 비용과 관련해 한 전 총리 측 소명과 일부 다른 사실이 드러났다며 미국 은행에 관련 사실을 조회해 달라고 재판부에 신청했다. 검찰은 “한 전 총리 아들이 2008년 미국 대학에 입학했는데, 당시 입학 조건 가운데 4만6000달러 이상의 예금 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미국 은행에 예금 내역을 확인해 보면 한 전 총리가 곽 전 사장에게서 받았다는 5만 달러와의 연관성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한 전 총리에게 “곽 전 사장이 아들의 유학비를 도와주겠다고 했느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재판부는 변호인 의견을 받아 본 뒤 증거 채택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한 전 총리에 대한 변호인 신문과 검찰 구형은 2일 이뤄질 예정이다.

최선욱·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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