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통령의 규제 완화 약속 기대 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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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노무현 대통령이 주한 외국기업 최고경영자(CEO)와의 만찬에서 "8700여 규제를 하나하나 재검토해서 풀 수 있는 것은 과감히 풀겠다"고 밝혔다. 모호한 내용은 명확하게 고치고, 행정절차에 드는 시간과 비용도 대폭 줄이겠다고 했다. 대통령이 기업인들에게 직접 이런 전향적인 인식을 표시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역대 어느 정권치고 '규제 완화'를 역설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국은 '규제 백화점'이다. 창업이나 신.증설, 투자 등 모든 기업 활동에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개입돼 있다. 대통령은 8700여개라고 했지만 실제 기업이 느끼는 규제는 훨씬 많을 것이다. 전경련은 현 정부 들어서도 규제가 202건 늘었다고 주장한다.

실상은 정말 심각하다. 비수도권 농지를 전용해 중소형 공장 하나 지으려면 순수 행정비용만 1억5000만원이 들며, 인.허가까지 약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규제가 68개나 돼 환경부.산업자원부.건설교통부.농림부.지방자치단체를 발이 닳도록 찾아다녀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공무원의 부정도 생긴다. 이러니 기업의 투자 의욕이 나겠으며 경쟁력을 키울 수 있겠는가.

기업 환경과 경쟁 여건은 크게 달라졌다. 그렇다면 기업 규제에도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더 이상 기업의 손발을 묶을 게 아니라 마음껏 뛸 수 있게 해야 한다. 대신 불공정 행위나 불법에 대한 사후관리를 강화하면 된다.

정부는 모든 규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규제 완화 의지를 재천명한 이상 이번만은 제대로 하는 것을 보고 싶다. 말로만 그치지 말고 기업과 국민이 '정말 달라졌구나'하고 느끼게 만들어라. 규제 주체를 중앙정부에서 지방으로 넘기거나, 숫자만 줄이는 식의 눈가림은 없어야 한다. 그래야 기업도 살고, 투자도 살고, 경제도 살고, 국민과 나라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