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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재집권] 부시 '악몽의 8개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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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3일 재선에 성공하기까지 천신만고의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다. "신(神)도 예측을 포기했다"는 말이 나올 만큼 혼전이었던 2004 미 대선 레이스는 지난 3월 2일 막이 올라 꼭 8개월간 계속됐다. 그날 미 전역 10개 주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존 케리가 초반 돌풍을 일으킨 하워드 딘 버몬트주지사를 꺾고 대권주자로 확정되면서다.

동부 명문가 출신의 베트남전 영웅 케리는 외교.경제에서 부시와 뚜렷한 차별성을 앞세웠다. "더 강하고 존경받는 미국을 만들겠다"가 그의 출사표였다. 반면 지난해부터 백악관 수성을 위해 전략을 세워온 부시는 "전쟁 중엔 장수를 바꾸는 법이 아니다"는 논리로 맞섰다. 테러와의 전쟁에 불안해하는 유권자들의 가슴을 겨냥한 것이다.

레이스 초반 잠잠하던 지지율 경쟁은 4월 들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라크에서 미군 전사자가 600명을 넘어서고, 미군이 아부 그라이브 감옥에서 이라크 포로들을 학대한 사실이 드러났다. 부시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때맞춰 9.11 위원회는 부시가 대테러 정책에 소홀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부시의 수족이었던 폴 오닐 전 재무장관, 리처드 클라크 전 백악관 보좌관은 부시의 외교를 맹공하는 책을 잇따라 펴냈다. 부시에겐 잔인한 봄이었다.

하지만 부시는 '왔다 갔다(Flip Flop)'란 한마디로 위기를 벗어났다. 케리는 상원의원을 네 번이나 지낸 경륜의 정치인이었지만 그게 부메랑이 됐다. 공화당은 걸프전엔 반대, 이라크전엔 찬성표를 던진 케리의 이력을 들먹이며 "이랬다 저랬다 말 바꾸기 전문가"라 몰아붙였다. 네거티브 전술이었지만 상당부분 유권자들에게 먹혀들어갔다. 미국이 전쟁 중인 상황인 만큼 지도자의 일관성 여부가 중요한 이슈였기 때문이다.

3일 투표가 완료되고도 부시는 가슴을 졸여야만 했다. 케리 캠프가 오하이오 재검표를 이유로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3일 오전 1시(한국시간) 케리는 백악관으로 전화를 걸어 "축하한다"고 승복의사를 밝혔다. 천신만고 끝에 신승(辛勝)을 거둔 부시 대통령은 이제 이라크 문제를 둘러싸고 두조각난 국가를 통합하고, 급변하는 국제환경 속에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리더십을 지켜나가야 하는 중책을 안게 됐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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