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한 상선 계산된 침범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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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인공기(人共旗)를 단 북한 선박이 우리 영해에 들어와 버젓이 항해하는 전례없는 사태가 발생했다. 합동참모본부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2일 세 척의 북한 상선이 우리 영해인 제주해협을 통과하다 해군의 유도에 따라 한 척은 당일, 두 척은 이튿날 공해를 빠져나갔다고 한다. 군당국의 설명에 따르면 의도적으로 자행된 영해침범이 분명하다.

제주해협은 국제법상 무해통항권(無害通航權)이 인정되는 곳으로 군함이 아닌 외국 상선은 사전통보 없이도 이곳을 통과할 수 있다.

하지만 남북한은 형식상 정전상태라는 특수관계에 있다. 이에 따라 우리 군은 북한 국적의 선박이 영해를 침범할 경우 교전규칙에 따라 작전조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북한이 한 척도 아닌 세 척의 상선을 동시에 대한해협을 무단항해토록 한 것은 우리의 안보의지를 떠보려는 도발행위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경제활동에 종사하는 북한 상선에 한해서는 무해통항권을 인정해줄 수도 있다고 본다. 실제 일본과 북한, 서해와 동해를 연결하는 북한 선박들의 경우 제주해협 항로를 이용할 경우 시간과 경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남북 당국간 사전협의를 통해 해결할 문제지 일방적으로 강행할 일이 아니다. 바로 그런 것을 논의하자고 남북 당국자 회담이 있는 것 아닌가.

올 들어서만 북한 경비정이나 어선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10차례나 침범했다. 그때마다 군당국은 '고의성 없는 단순 월선(越線)' 을 내세우며 조용조용히 넘어갔다.

이번 경우에도 교전규칙을 엄격히 적용하자면 정선(停船).나포 등의 조치를 취했어야 하지만 위해(危害)행위가 없는 민간선박이라는 이유로 근접기동을 통해 공해상으로 유도하는 데 그쳤다. 남북 화해 분위기를 고려한 미온적 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다.

남북 화해와 굳건한 안보태세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것이다. 정부는 북한측에 엄중 항의하고 이런 사태가 재발할 경우 원칙에 따라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전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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