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 한자루…' 만화가 장진영씨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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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남 눈치 돈 눈치 봐야 하는 전세살이가 지겨워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7년 전 강화도로 이사를 했다. 땅을 사서 손수 집을 지으며 했던 다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스스로 농사를 지어먹고 살겠다는 '자급자족' . 또 하나는 "내 삶에서 우러나오는 작품을 그리겠다" 는 작가로서의 결심이었다. 『삽 한자루 달랑 들고』(내일을 여는 책.6천원)로 올 상반기 '오늘의 우리만화' 본상을 수상한 '농부 만화가' 장진영(44.사진)씨 얘기다.

『삽 한자루…』에는 과거 노동운동을 했던 그가 농민들의 고단한 삶을 지켜보며 느꼈던 부끄러움과 깨달음, 끝내 '제대로 된 농부' 가 되지 못하고 '건달 농사' 를 지을 수밖에 없는 한계 등이 담겨 있다.

또 정신없이 돌아가는 도시와 자본주의의 속도에 늘 어지럼증을 느꼈던 그가 한걸음 물러나 애정과 관조의 시선으로 자신과 주변의 삶을 돌아보는 반성적 내용이 실려 있다. 그림체도 만화라기보단 삽화에 가까울 정도로 부드럽고 포근한 붓의 맛이 풍긴다.

"강화로 내려갔던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어요. 소련의 붕괴로 많은 운동권이 그랬듯 저도 제가 해왔던 운동의 형태와 방향을 놓고 고민을 많이 했지요. 『노동자신문』등에 선전.선동적인 만평을 그리면서 사고가 많이 굳어졌다는 주위의 비판도 달게 받아들였고요.

이 작품은 나와 내 이웃의 삶을 이루는 아주 작은 것부터 실천하려는 각오를 담은 것입니다. " 과거의 활동이 '거시적' 실천이었다면 이제는 농사와 그림을 통해 '미시적' 실천을 하겠다는 얘기다.

그는 "변화하려는 나와 그런 나를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여유있도록 만들어준 강화의 자연, 그리고 과거 홍익대에서 회화를 전공한 경력 등 '삼박자' 가 맞아떨어지면서 『삽 한자루…』같은 작품이 나온 것 같다" 고 말했다.

"뭣이든 자신이 하는 일을 돈벌이와 연결시킬 때 근심이 싹튼다" 고 작품에서도 말했듯 먹고 사는 문제에서 그도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

대안교육에 뜻을 두고 강화도로 내려올 정도로 별난 구석이 있는 출판사 덕택에 책을 내긴 했지만 별 소득은 없다. 상금은 없어도 "내 책을 5백만원어치나 구입해 도서관에 기증한다니 그것 역시 고맙다" 는 그를 보며 요즘 보기 드물게 '느린' 만화이자 '착한' 만화인 『삽 한자루…』의 동네가 궁금해졌다.

글=기선민,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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