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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양자 암호'시대 성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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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 금속의 원자핵을 특수현미경으로 본 모습. 이를 양자로 활용할 수도 있다.

▶ 무선으로 광자를 쏘아 양자암호를 송수신하는 장치. 망원경처럼 생긴 곳으로 광자 낱개가 튀어나가거나 받는다. 광자를 받을 곳을 잘 조준해 발사해야 한다.

빛은 광자가 다발로 쏟아지는 현상이다. 전기를 전자가 옮기듯 광자가 빛을 전파하는 것이다. 형광등 하나가 내뿜는 광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 빛을 계속 어둡게 해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한 개의 광자만 남을 수 있다. 그 광자 하나하나에 암호를 실어 보낸다면 어떨까. 그 누구도 도청하지 못하는 무적의 암호가 된다. 이른바 양자암호다.

양자암호가 1984년 IBM 찰스 베넷 박사에 의해 개발된 지 올해로 20년이 됐다. 그동안 연구실 차원에서나 다뤄지던 양자암호가 본격적으로 실용화되고 있다.

지난 4월 오스트리아 빈 시장은 세계 처음으로 양자암호기술이 적용된 은행송금시스템으로 빈대학의 차일링거 교수의 계좌에 3000유로를 송금했다.

지난 6월 미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시의 BBN테크놀로지와 하버드대 사이 10㎞ 거리에 양자통신망이 설치됐다. 지난해에는 일본 도시바가 100㎞ 거리의 광섬유로 양자암호통신을 성공하기도 했으며, 스위스의 한 업체는 양자암호통신장치를 판매하고 있기도 하다.

양자암호가 무적의 암호시스템으로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김재완 교수는 "기존 암호시스템은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언젠가는 풀리게 된다"며 "양자암호는 도청하거나 복사하지 못하는 완벽한 암호"라고 말했다. 암호를 저장하고 있는 양자는 중간에 다른 사람이 복사하면 복사하는 순간 양자에 저장된 정보가 달라지는 데다 원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

인터넷에 있는 정보는 내려받아도 원본에는 전혀 변화가 없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 때문에 양자를 누군가 중간에 복사 또는 도청하면 즉시 들통난다.

인터넷 통신을 비롯한 군 통신 등에는 거의 대부분 암호를 섞어 주고 받는다. 이를테면 원문에 송수신하는 사람만 아는 숫자를 더하거나 빼서 보낸다. 수신자는 수신한 정보에서 암호 숫자를 없애면 알맹이 정보만 남는 식이다.

현재 양자암호가 상용화된 것은 광섬유를 이용한 광통신에서다. 광섬유에 낱개 광자를 연속해 쏘아 수신처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광섬유가 광자를 흡수하지 않고 잘 전달하기만 하면 됐다. 중간에 장애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무선으로 양자암호통신을 시도해 성공해 양자암호의 응용 가능성을 크게 넓히고 있다.

영국 브리스톨대, 미국 로스앨러모스연구소팀은 각각 햇빛이 내려쬐는 대낮에 10~20㎞의 양자암호 통신에 성공했다.

이는 대낮에는 태양에서 쏟아지는 광자가 암호를 실은 광자와 섞이거나 태양의 활발한 활동으로 인해 원래의 신호가 변질될 수 있어 매우 어려운 실험이다.

또 광자를 정확하게 상대방에게 겨냥하지 않으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버릴 우려도 있다. 이 실험의 성공은 위성통신에 양자암호를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양자암호가 기존 암호시스템과 다른 점은 양자가 갖는 특성 때문이다. 양자는 광자나 이온.원자핵 등으로 만들 수 있다. 반도체칩에서는 0이나 1 중 어느 하나만을 한 비트에 저장하지만 양자에는 0과 1 외에 두가지가 중첩되어 있는 상태도 저장할 수 있다. 즉, 이에 따라 8개의 한 바이트에는 윷놀이 할 때 나타나는 도.개.걸.윷의 16가지 조합을 동시에 나타낼 수 있다. 기존 반도체는 어느 한 가지만을 표시할 수 있을 뿐이다.

아직 양자암호는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지금은 양자를 복사하거나 증폭시킬 수 없다. 그렇게 하면 당장 양자 상태가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성공한 실험이나 상용제품도 어느 두 지점 간에만 송수신이 된다. 이 때문에 태평양을 횡단하는 것은 고사하고, 대도시 안에서도 양자암호장치를 사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김 교수는 "양자암호 장치는 지금 극히 초보적인 상태이지만 얼마 안가 지금의 암호장치를 대체할 것"이라며 "우리나라도 이 분야의 연구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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