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천안함 침몰은 국가적 위기상황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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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우리는 지금 비상(非常)한 위기에 처해 있다. 서해 최전선에서 작전 중이던 1200t급 초계함이 느닷없이 폭발과 함께 두 동강이 된 후 침몰했다. 국가 방위를 위해 헌신하던 46명의 젊은 용사들이 실종됐다. 이 비통함을 어떻게 말로 다 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다 실종자 수색·구조 작업은 지지부진이고, 침몰 원인도 오리무중이다. 경악과 함께 불안의 그림자가 국민들 사이에 스며들고 있다.

그러나 국가 차원의 위기가 닥친 지금 같은 때일수록 냉정하고 차분하게 단합된 힘을 발휘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위기관리 능력은 또 한번 큰 시험대에 올랐다. 천안함 침몰이 앞으로 어떤 사태로 번질지 누구도 짐작하기 어렵다. 다만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모든 가능성을 고려한 대책들을 철저히 준비해 현명하게 이 난국을 헤쳐나가는 지혜와 각오다. 가장 긴장감을 갖고 대비해야 할 사태는 북한의 무력 도발로 침몰했을 경우다. 후속 교전(交戰), 나아가 남북 간 확전(擴戰)이라는 미증유의 사태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에 고도로 냉철한 상황 인식과 판단이 요구된다. 이런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하고 있는 안보관계장관회의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두 번째는 이번 침몰 사태가 우리 군(軍)의 존재 이유와 국민의 대(對)정부 인식에서 위기를 부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 내부의 ‘신뢰의 위기’ 가능성에 각별히 대처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생존자 구조를 최우선시한 것은 잘한 일이다. 국가의 부름에 기꺼이 자식을 군문(軍門)에 들여보낸 부모들의 심정을 생각해보라. 서해 바다에서의 실종은 결코 남의 집 자식 일이 아니다. 침몰 후 50시간이 지나도록 생사 확인조차 못하는 상태에서 오죽하면 “차라리 우리가 배를 사고 잠수부를 고용해 수색하겠다”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실종자 가족 입장에서는 북한의 짓이라면 왜 사전에 방어하지 못했으며, 우리 측 잘못이라면 그야말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정부가 사태 수습에 밤낮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자식의 생사 확인에 애가 타는 부모들을 총기를 든 병사들을 앞세워 제지하는 장면이 TV 화면을 탄다면 그 같은 노력에도 어떤 식으로든 흠이 갈 수밖에 없다. 적(敵)에의 단호한 대처 못지않게 우리 내부의 신뢰와 단합도 위기 관리의 중요한 요소임을 명심해야 한다.

국가적 위기 상황 극복은 정부나 군 당국만의 몫이 아니다. 일반 국민들도 상황 타개(打開)에 힘을 모아주어야 한다. 우선 실종자 수색과 조사 작업에 신뢰와 기대를 보내며 차분히 지켜보자. 설익은 의혹을 앞세우는 것은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잘못을 따지고 규탄할 일이 있다면 문제점이 명백히 드러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그것이 국가적 재난을 슬기롭게 이겨내는 지름길이다. 비탄에 젖어 있는 실종자 가족들을 돕는 길이기도 하다. 이번 사태의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상황 발생에서 극복까지 전 과정은 국가 위기관리 매뉴얼의 한 전범(典範)으로 남도록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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