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건강보험 무임승차 없애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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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소득이 있으면서 건강보험을 한푼도 내지 않은 사람이 65만명(1998년 소득 기준)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 보험료 징수체계에 구멍이 뚫려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최근 한 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들이 국세청에 종합소득신고를 하고도 자녀 등 가족 명의의 건강보험에 피부양자로 등록하는 바람에 연간 1천5백억원의 보험료가 걷히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는 연간 소득이 1억원 이상인 사람도 1천3백89명이나 포함돼 있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지금 건강보험 재정은 어떤 상태인가. 해마다 국고지원으로 근근이 버텨온 지역의보에 이어 비교적 건실하던 직장의보마저 파산 위기에 직면해 있다.

올해에만 4조원 가량의 재정적자가 예상되는 실정이다. 정부는 조만간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누수 요인들을 철저히 차단하지 않고선 아무리 좋은 처방을 내놔도 허사일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 '무임승차' 는 어느 정도 예견돼 왔던 일이다. 소득 유무와 관계없이 직장의보 가입자의 배우자나 60세 이상 부모를 모두 피부양자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허점을 이용해 일부 고소득 자영업자들은 자녀 등의 직장의보 혜택을 누려왔다.

그럼에도 지역의보 가입자의 소득 파악률은 26% 수준에 머물러 있다. 또 근로자 소득보다 자영업자 소득이 높지만 자영업자의 신고소득은 전체 근로자 소득의 55~60% 수준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런 데도 정부는 정치적 공약 등에 떠밀려 당초 예정대로 내년 1월부터 직장과 지역의보 재정을 통합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상태에서 재정을 통합한다면 근로자의 부담만 늘어날 뿐이며 직장의보마저 거덜날 수 있다.

따라서 재정통합보다는 누수 요인들을 철저히 찾아내 이를 바로잡는 게 급선무다. 이를 위해선 국세청을 통한 의보료 징수 등 지역의보 가입자의 보험료 징수를 늘릴 수 있는 획기적인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런 연후에 의보재정을 통합하는 게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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