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흡연·커피·개인통화 금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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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분당 본사에서 근무하는 황모(38)과장은 지난 1일부터 담배를 끊었다. 회사가 이날부터 집중근무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이 제도의 시행으로 임직원들은 오전 9시30분부터 11시까지 흡연은 물론 ▶커피를 마시며 담소한다든가▶개인적인 통화를 할 수 없다. 심지어 급한 상황이 아니면 이 시간에 결제도 못한다. 오로지 자기 업무에만 매달려야 한다. 그래서 황 과장은 차라리 담배를 피우지 않기로 한 것이다.

KT가 이처럼 업무의 강도를 높이는 것은 위기 의식이 반영된 결과다. KT는 민영화(2002년 8월 20일)된 지 2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과거 공기업 체질이 남아있는 데다 뾰족한 새 수익사업이 없어 고민 중이다. 주력사업인 초고속인터넷이 조금씩 수출로 활로를 찾고 있으나 국내 매출은 정체상태다. KT의 전체 매출액은 2002년 11조7462억원에서 지난해 11조5745억원으로 줄었다. 순익 역시 1조9638억원에서 8301억원으로 급감했다. 지난해 명예퇴직금으로 쓴 8000여억원을 빼도 순익은 3000억원 이상 줄었다.

그러자 이용경 사장이 변화의 고삐를 죄고 나섰다. 이 사장은 "KT가 살아남는 길은 변화밖에 없다"며 "머리에서 발끝까지 다 바꾸겠다"고 강조했다. 이 사장은 최근 간부회의 석상에서 "우리의 가장 큰 경쟁상대는 경쟁사업자가 아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우리 자신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 사장은 또 "더 큰 문제는 독점적으로 수십년간 통신사업을 이끌어왔다는 자부심에서 비롯된 매너리즘과 함께 '해도 안 된다'는 패배주의"라고 덧붙였다. 그는 회의 말미에 "내년부터 기업의 평균 수명이 15년으로 줄어든다는데, 15년 뒤에 KT가 사라진다는 생각을 한번 해보라"며 꼬집었다.

결국 KT는 변화의 첫 단추로 집중근무제와 러브콜 제도를 뀄다. 러브콜은 상무대우 이상 간부들이 직원들을 대상으로 매일 무작위로 전화, 의견을 수렴하는 제도. 경영진이 현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경영에 적극 반영한다는 취지다. 윗사람에게 보고할 때 출력된 인쇄물 대신 e-메일 등 컴퓨터를 활용토록 하는 'e보고 시스템'을 강화했다. 비효율적인 보고문화를 개선하고 의사결정를 빠르게 하기 위해서다.

예산절감을 위해 임직원들의 밤샘 당직도 폐지했다. 수당을 줄이려는 조치다. 게다가 요즘 과장급 이상 5000여명은 '위기를 기회로'(C2C:Crisis to Chance)라는 교육도 받는다. 이들은 이 교육에서 향후 근무목표를 적은 '자기 사명서'를 작성한다. 자기 사명서는 간부들이 컴퓨터를 켤 때마다 초기화면에 뜬다.

정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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