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정원 1,000명 시대… 변호사도 구직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이젠 한 해에 1천명이 늘어난다구요!"

서울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 주변에서는 요즘 이런 걱정이 한창이다. 바야흐로 '변호사 연(年) 1천명 배출 시대' 를 맞은 변호사 업계의 신음이다.

지난해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법연수원 신입생(연수원 32기)이 8백명. 게다가 내년부터는 사법시험 합격자가 1천명으로 확대된다. 변호사는 늘어나고 수입원인 '사건' 은 늘지 않으면서 적잖은 변호사들이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을 맞은 것이다.

◇ 아무래도 서울을 떠나야=서초동 40여평짜리 사무실에 직원 두명을 둔 A변호사는 월말만 되면 돈 걱정을 해야 한다. 월세 3백만원(보증금 3천만원)에 직원 두명 인건비 3백만원, 기타 경비 등으로 매월 1천만원이 필요하다.

A변호사는 최근 서울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이처럼 서울을 떠나 지방 중소도시에 자리잡는 변호사가 늘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에 따르면 올 1월부터 지난달까지 서울에서 수원.춘천 등으로 사무실을 옮긴 변호사는 11명이다. 지난해까지는 한해에 20여명이 서울을 떠난 것에 비해 증가세다. 대한변협의 한 관계자는 "사무실 운영이 어려운 변호사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고 설명했다.

◇ 나 변호사 맞아?=최근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내놓은 통계는 서울지역 변호사들의 월 수임 사건이 급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변호사 1인당 연평균 사건 수임 건수가 1996년 58.5건이던 것이 지난해에는 41.5건으로 무려 17건이나 줄어들었다.

특히 지난해 서울변호사회 소속 변호사(2천6백63명) 중 수임 건수가 평균 이하인 변호사는 66%(1천7백53명)나 됐다.

서울 변호사의 절반 이상은 연 20건 미만의 사건을 수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최근 2년 동안 해마다 2백60여명이 변호사 개업을 했다.

현직 판.검사들이 "개업이 두렵다" 고 말할 정도다.

◇ 새 시장을 찾아라=일부 변호사들은 서울에서 새로운 시장을 찾고 있다. 모 법무법인은 지난해 서초동에서 강남역 근처 벤처 밸리로 사무실을 옮겼다.

앞으로 새로운 유형의 법률 분쟁이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벤처 밸리에 사무실을 열어 새로운 수요자들을 선점하자는 것이었다. 이 법인의 한 변호사는 "법원과는 좀 멀어졌지만 새로운 의뢰인을 개척하면 승산이 있다는 생각" 이라고 말했다.

변두리 지역으로 사무실을 옮기는 변호사도 있다. 서울 관악구에 사무실을 연 B변호사는 "소송에 엄두를 못내는 주민들을 직접 접촉하기 위해 사무실을 옮겼다" 고 말한다.

이와 함께 변호사 자격증을 활용해 기업체나 행정부처.국제기구 등에서 전문 직업인으로 일하려는 변호사들도 늘고 있다. "변호사는 자격일 뿐" 이라는 인식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김승현.이가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