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고이즈미의 우경화 바람몰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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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일본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금처럼 오른쪽으로 몰려갈 경우 과연 그 끝은 어디인가. 뒤로 돌아가는 역사의 시계 바늘을 타고 군국주의의 망령이 부활하는 것은 아닌가. 취임 3주째를 맞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의 높은 인기를 보면서 우리는 이런 의문과 함께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고이즈미 총리는 80%대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고, 심지어 90%를 넘는 조사까지 나왔다. 역대 정권 최고의 지지율이다. 아무리 집권 초기의 '허니문 기간' 을 고려하더라도 '이상과열(異常過熱)' 임이 분명하다. 그를 비판하면 낭패를 보는 맹목적 지지 분위기까지 나타나고 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고이즈미 총리는 과감한 경제 구조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공약했지만 아직 뚜렷하게 내놓은 게 없다. 국민의 희생이 불가피한 구조개혁은 가급적 뒤로 미루면서 '강한 일본' '할 말은 하는 일본' 이라는 이미지 공세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문제에 대해 오락가락하더니 결국 총리 자격으로 공식 참배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헌법 재해석을 통해 유사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전쟁 포기를 규정한 평화헌법의 개정 문제도 공식 아젠다로 올려놓은 상태다. 역사 교과서에 대해서도 '재수정 불가' 로 선을 그었다. 정도(正道)보다 인기를 의식한 대중적 선동주의와 출구를 찾는 일본인의 불안 심리가 상승작용을 일으킨 결과가 고이즈미 총리에 대한 폭발적 인기가 아닌가 하는 점에서 우리는 심각한 우려를 갖게 된다.

특히 이같은 내부 사정과 미국의 부시 행정부 출범이 맞물려 일본의 우경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 일단 깃발만 꽂으면 한쪽으로 몰려가는 일본인 특유의 근성이 주변국에 초래한 불행한 결과를 일본은 명심해야 한다.

일본을 위해 진정 필요한 것은 국민의 희생을 요구할 줄 아는 정직과 용기임을 고이즈미 총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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