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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도 나이도 잊었다 … 눈빛 통한 춤꾼 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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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 명은 젊고 한 명은 나이 지긋하다. 한 명은 현대 무용을 하고, 다른 한 명은 전통춤을 춘다. 둘은 당연히 같은 무대에 선 적이 없다. 교집합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두 무용수, 무형문화재 승무 이수자 채상묵(66)씨와 현대 무용가 이용우(29)씨가 함께 공연한다. 다음달 9, 10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조율’에서다.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어려운 두 사람은 과연 무슨 생각으로 이런 도전을 하는 걸까. 그리고 둘의 춤사위는 어떻게 튜닝돼 갈까.

# 전통춤의 이단아, 주류에 서다.

채상묵(뒤)씨와 이용우씨. 채씨는 내적 번뇌와 깨달음을 승무로, 이씨는 젊은이들의 방황을 춤으로 풀어낸다. 음악은 남해안별신굿보존회, 김주홍과 노름마치가 맡는다. [김성룡 기자]

전북 전주 출신의 채상묵씨는 중학교 때부터 춤에 빠졌다. 소질도 많았다. 살풀이춤·광대춤·장고춤 등을 다 소화해냈다. 전통춤에 일가견이 있는 선생들이 앞다투어 그를 키우기 위해 나섰다. 그런 와중에 그를 데려가지 못하게 된 선생이 몽니를 부리는 경우도 있었다. 전통전용관 코우스의 진옥섭 예술감독은 “스포츠로 치면 스카우트 파동이라고 해야할까. 명인들 틈바구니에서 청년 채상묵은 희생양이 되곤 했다”고 말한다.

스타일도 유별났다. 그는 일찍이 ‘전통의 현대화’에 눈을 떴다. 1980년대 중반 가수 김수희의 노래 ‘님’에 맞춰 1시간짜리 무용을 만들어냈고, 세계적인 작곡가 반젤리스의 음악으로 ‘공수래공수거’란 작품도 올렸다. 조끼를 열어젖혀 너울거리게 만드는 등 의상·조명·무대도 변화를 주었다. 당시 분장실로 찾아온 선배의 왈. “야, 이 미친놈아. 한국춤 추는 놈이 이게 뭐 하는 짓이야.”

2004년 바비 맥퍼린과 함께 무대에 섰던 그가 현대 무용과 협업을 하는 건, 예정된 수순일지도 모른다. 그는 “비행기·KTX 타고 다니는 세상에 아직도 가마 타고 다니는 춤만 춰야 되겠는가”라며 “전통춤은 기본적으로 교태미가 있어야 하지만, 이번엔 과묵하고 덤덤하게 승무를 출 것”이라고 말했다.

# 조각남? 아니 넘버원 춤꾼!

어디서 본 것 같다고? 맞다. 이용우는 지난해 드라마 ‘스타일’에서 사진작가 ‘김민준’으로 나왔던, 그 조각남이다. 모델로도 활동해 왔던 그는 본래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을 나온 무용수다. 대충 무용과에 이름을 올린, ‘날라리’ 무용수가 아니라 춤도 진짜 잘 춘다. 무용가 신창호씨는 “무대 장악력, 폭발적인 에너지 등이 탁월하다. 동년배들 중엔 안무 능력도 가장 좋은 편”이라고 전했다.

그는 2년 전 세계적인 현대 무용단 ‘DV8’에 입단하기 위해 영국으로 무작정 날아갔다. 오디션을 보고 난 뒤 무용단의 반응. “테크닉은 뛰어나다. 근데 표현력이 너무 틀에 꽉 매여 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당장 연기학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그 인연으로 드라마까지 출연하게 됐다. 현재는 아이돌 스타 유이와 함께 나오는 골프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발탁된 상태다. 바쁜 스케줄일 터. 그래도 “무용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내 근본”이란다. “서 있는 것만으로도 무대를 꽉 채우시는 채 선생님과의 작업이기에” 흔쾌히 응했다고 한다. “새로운 형태의 무언가를 짜내고 만들어가는 것 자체가 나를 긴장시킨다”고도 말한다.

▶무용 ‘조율’엔 하용부·박경랑·김은희·차진엽씨 등도 출연한다. 4월 9, 10일 LG아트센터. 3만∼6만원. 02-2005-0114.

글=최민우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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