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비야·정미영·존스씨의 우리가 걷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이 세상에 태어난 은총을 맛보려면 걸어라. "

『걷는 행복』이란 책을 쓴 이브 파칼레의 말이다. 사람들이 걷는 이유는 다양하다. 건강을 위해, 사색을 위해, 혹은 걷는 게 가장 편리한 교통수단이 될 때…. 시민단체가 여는 걷기대회는 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함께 걷는 일은 때로 생활 문화 바꾸기를 향한 작은 움직임이 되기도 한다.

한국여성민우회 주최로 오는 13일 남산에서 열릴

걷기대회(http://walking.womenlink.or.kr)에 참가하는 한성여중 정미영(33)양호교사, 오지탐험가 한비야(43)씨, 뉴질랜드 출신 박사과정 학생 니콜라 존스(30). 걷기대회에 참가하는 이유는 조금씩 다르지만 한국의 기부문화와 여성문제에 관한 한 '더 변화가 필요하다' 는 생각은 닮은 꼴. 일상에서 '작은 운동' 을 아끼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그들이 걷는 이유

한=사람들이 많이 걸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나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걷기를 권유해왔다. 가장 고급여행은 시각과 후각.촉각 등 오감을 충족시키며 걷는 여행이다. 걷기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어 좋고, 달리기처럼 경쟁을 하지 않아서 좋다. '생활 속의 기부문화 만들기' 의 뜻을 전하는 자리라는 점도 맘에 들었다.

정〓여중에서 일하는 나는 아이들에게 '여성' 에 대해 눈을 열어주고 싶었다. 여성의 권익을 위해 일하는 여성단체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다. 교실 안에서 길게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참여하면 교육적 효과가 훨씬 크다. 학교에서 '참가하고 싶은 사람을 찾는다' 는 공고를 냈더니 63명이 신청을 했다. 아이들이 낸 2천원의 참가비도 여성단체의 활동을 지지하는 일종의 '기부' 라고 본다.

존스〓나는 지금 '한국여성운동과 남미 특히 칠레의 여성운동' 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여성단체의 꾸준한 활동이 있었기에 한국여성들의 지위가 향상될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여성의 지위가 저절로 좋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여성을 위한 법.제도의 내용을 모르는 여성이 대다수다. 여성 권익을 위해 일하는 여성단체들은 정작 돈이 없어 홍보를 잘 못한다. 걷기대회는 여성단체가 하는 일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 기부는 나눔

한〓외국엔 참가자들이 친구나 가족에게서 직접 후원금을 받아서 대신 거둬주는 기금 마련 행사가 참 많다. '기부' 를 뭔가 많이 가진 사람이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적게라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이번을 계기로 '기부' 의 개념 자체의 틀을 바꿔보면 어떨까.

정〓맞다. "아이들한테 기부해봤니?" 하고 물어보니깐 일제히 "난 돈 없어요" 라고 대답했다. 아이들은 자기가 베풀 수 있다는 생각 대신에 항상 '받아야 한다' 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존스〓한국에는 여성단체 등을 지원하는 재단이 없는 것 같다. 해외에서는 '큰 기업은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 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한국의 모성보호법 논란을 지켜보면서 좀 놀랐다. 경영자단체가 나서 모성보호법을 적극 반대한 까닭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모성보호는 여성의 문제만이 아닌데. 흔히 한국은 가족을 중시하고, 서양 사람들은 개인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는 그 반대라는 생각도 든다.

존스씨는 얼마 전 여성부 대외협력국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받은 보수 중 일부를 떼어 민우회에 기부해 관계자들을 감동시켰다.

"여성단체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었을 뿐" 이라는 그는 "여성들이 딸을 낳았을 때 이를 축하하는 기념으로 여성단체에 기부금을 내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 고 반문했다.

이은주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