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봉은사 사태, ‘무소유’ 법정 스님이 뭐라 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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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법정 스님이 온 국민의 애도 속에 입적(入寂)한 지 겨우 열흘 남짓 지났다. 그런데 서울 강남의 봉은사 운영권을 둘러싼 논란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봉은사가 속해 있는 조계종의 총무원이 지난 11일 중앙종회 의결을 거쳐 봉은사를 특별분담금 사찰에서 총무원 직영 사찰로 전환하기로 결정한 것이 발단이다. 직영 사찰이 되면 총무원장이 당연직 주지를 맡아 재정을 직접 관리하게 된다. 봉은사 측의 반발은 예상된 것이었다. 급기야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이 그제 일요법회에서 “지난해 11월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자승 총무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정권에 비판적인 스님을 강남 부자 절에 그냥 놔두면 쓰겠습니까’라고 얘기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봉은사의 직영 사찰 전환이 정치권의 압력에 따른 것이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봉은사가 직영 사찰로 전환되든 특별분담금 사찰로 남든, 어디까지나 종단 내부의 문제이며 또 그래야 마땅하다. 우리가 묻고 싶은 것은 명진 스님이 제기한 정치권 외압설(說)이 과연 사실인지, 그리고 일개 사찰 운영권 문제로 이렇게까지 나라 전체를 어수선하게 만들어야 하는지다. 적지 않은 국민은 1988년의 봉은사 주지 다툼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조계종이 임명한 신임 주지와 전임 주지 측이 각기 쇠파이프·각목을 든 수백 명을 동원해 대규모 유혈사태가 빚어졌다. 그야말로 ‘부처님도 돌아앉을’ 낯 뜨거운 다툼에 많은 국민이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이번 사태는 22년 전과는 성격이 다르다. 조계종 총무원 측은 수도권 ‘포교(布敎) 벨트’를 강화하고 봉은사의 종단 기여도를 높이기 위해 직영 사찰 전환이 불가피했다고 강조한다. 전환 과정도 종헌·종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2006년 취임 이후 재정을 투명하게 관리하고 일반 신도도 종무회의에 참여하는 등 사찰을 모범적으로 운영해 온 명진 스님 입장에서는 할 말이 많을 것이다. 봉은사의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이번 결정 과정에서 배제되었다는 지적도 충분히 수긍할 만하다. 조계종 차원에서의 원만한 해결을 촉구한다.

안상수 원내대표가 사찰 운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발언했다는 의혹은 이와 별개의 문제다. 여당 원내대표의 개입으로 조계종 산하 중요 사찰의 운영권이 좌지우지된다는 것은 믿기 힘들지만, 만의 하나 특정 주지 스님을 배제하라는 요청이 있었다면 그야말로 종단 차원에서 대처할 문제라고 본다. 의혹을 받는 당사자와 조계종, 명진 스님 간에 진실이 확실히 규명돼 국민의 우려와 궁금증을 풀어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무소유(無所有)’의 삶을 살다 간 법정 스님이 이번 사태를 목도(目睹)한다면 어떤 심정일지 새겨보기 바란다. 스님은 생전에 “입안에 말이 적고, 마음에 일이 적고, 배 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맑고 향기로운 말씀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불교계가 많은 국민에게 걱정을 끼쳐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