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성적표를 살펴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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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송은 대치 에듀플렉스 원장

새 학기가 시작됐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생과 학부모의 긴장감도 점점 심해진다. 3월이면 각오도 남다르다. 올해는 전교 몇 등 안에 들어간 성적표를 받아보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성적표에는 학생의 학습 성취도가 노골적으로 담겨있다. 성적표 한 장만 있으면 몇 점을 맞았고, 그래서 몇 등이며, 결국 전체 학생중에서 몇 % 안에 드는지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학부모는 성적표의 자료를 근거로 내 아이가 얼마나 ‘공부를 잘 하는 아이’인지 가늠한다.

하지만 요즘 우리 아이가 도대체 어떤 ‘마음가짐’으로 공부에 임하고 있는지는 성적표를 봐도 알 수 없다. 공부에 임하는 마음의 성적은 실제 성적과 엇비슷하기도 하고, 전혀 어긋나 있기도 하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다는 의지, 나에게는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다는 자부심, 목표한 것은 반드시 해내고 말겠다는 승부욕, 결심하면 그대로 몰입할 수 있는 집중력, 그리하여 마침내 이루고 싶은 미래의 꿈.

이런 마음의 성적표는 점수 그 너머에 있다. 부모님은 애가 타서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학생을 다그친다. 하지만 학생의 마음이 부모의 그 열정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그저 덧없는 공염불일 따름이다.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은 이 마음의 성적표에 달려있다. 마음가짐에 따라 하위권이 상위권으로 껑충 뛰어 오르기도 하고, 최상위권이 하루아침에 하위권으로 곤두박질치기도 한다.

다음은 서울 대치동에 사는 A군의 생각이다. A군은 기본적으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따로 있다고 확신한다. 6개나 되는 학원을 다니느라 바쁘지만 공부를 통해 보람을 느껴본 일은 거의 없다. 그저 피곤할 따름이다.열심히 공부해 꼭 하고 싶은 일도 없다. 왜 모든 학생은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다.

게임이나 음악 등 관심 있는 분야가 따로 있는데, 왜 모두가 공부만 해야 하는지 도통 납득하기 어렵다. 시험 결과는 언제나 평소 실력보다 안 좋게 나온다. 하지만 실수로 틀린 문제니까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시험은 운에 달린 것인데, 무엇하러 점수에 목을 매야 하는지 한심하기 그지없다.

주변에는 A군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학생들이 너무도 많다. 이런 생각에 젖어 있는 학생들이라도 기계적으로 학원을 오가며 주워들은 지식들로 당장의 기본 점수는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공부라는 장거리 경주에서 최후의 승자로 남을 수는 없다. 이미 내공부의 주인은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이 빠진 승부에서 진심전력을 다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공부는 자아의 가치를 탐색하는 청소년기의 학생들이 가장 강력하게 자신의 효능감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다. 내 안에 존재하는 탁월함과의 만남은 공부의 모든 영역에 걸쳐 이뤄진다. 만약 내 아이가 권태와 무기력이 가득한 표정으로 성적표를 내밀었다면, 이제 숫자 너머 그 안쪽에 숨어 있는 아이의 마음에 세심하게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본질은 쉽게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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