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지명의 無로 바라보기] 만사는 온라인 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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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인터넷에 색다른 사건 얘기가 올랐다. 20대 청년 둘이 인터넷에서 대학생들과 사귀었다. '리니지' 라는 게임에서 상대 대학생 참여자들이 그 청년들만 집중적으로 공격하면서 놀림감으로 삼았다.

따돌림과 게임 패배에 격분한 두 청년은 다방으로 상대를 불러내 폭행을 하고, 인터넷에서 거래되는 5백여만원 상당의 게임무기를 강제로 빼앗았다. 경찰은 두 청년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 청년들이 좀 과격하게 행동하긴 했지만 우리 중생의 마음상태의 일면을 드러냈다. 우리는 게임꾼들이다. 모든 환경과 주변사람들이 게임 파트너들이다. 시기.질투.다툼은 물론이거니와 친절과 사랑까지도 게임의 일종이다.

상대가 좋아하고 필요한 것을 알고 그대로 상대에게 베풀어 주는 데도 게임심리가 들어 있다. 상대의 마음을 내가 제대로 짚었는지를 생각하면서 기뻐하기도 하고 침울해하기도 한다. 속세를 떠나 깊은 산속에 숨는 것도 마찬가지다.

은둔 자체가 일종의 게임이기도 하지만 산.물.나무.새들과 교류하면서 장난을 치지 않고는 답답해서 살 수가 없다. 설사 외면적으로 자연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내면적으로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상이나 신념을 지어낸다. 남 앞에서 권력을 잡으려는 정치인, 남보다 더 좋은 화면이나 지면을 제공하려는 언론인들은 물론이고, 화가.작곡가.소설가 등도 또한 게임꾼들이다.

*** 고정된 것 없음을 깨달아야

컴퓨터상의 게임과 현실의 생존은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물질과 문화의 역사는 없어지지 않고 축적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짧게 보면 그렇다. 내 몸에 꼭 맞는 최고급의 옷을 만들었다고 치자. 나에게는 대단히 귀중한 것이다.

그러나 내가 늙고 병들어 죽고 난 다음에 다른 이에게는 태워야 할 짐이 돼 버린다. 이미자나 나훈아의 노래를 좋아하던 이에게 남인수나 이난영의 노래는 구식이고, 다시 요즘 청소년들에게 과거의 노래 모두가 구식이다. 인공위성을 이용해 감시망을 만들고 장거리를 향해 솟아오르는 모든 미사일을 대기권 밖에서 폭발시키려는 장치가 미국에는 아주 좋은 옷일 것이다.

*** 언제고 승패는 바뀔 수 있어

그러나 그것은 미국에 맞는 옷이다. 진시황이나 칭기즈칸.알렉산더나 나폴레옹이 만들었던 강대국이라는 옷이 뒷날 소멸됐듯이 현재의 초강대국의 옷도 스스로 허망하게 무너져 내릴 날이 있다. 무량억겁의 긴 시간에서 볼 때 천지개벽은 컴퓨터 화면의 깜빡임과 같다.

하버드 의과대학 연구팀은 단맛을 좋아하는 유전자라고 생각되는 것을 쥐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그것을 응용한다면 장차 사람에게서도 단맛을 좋아하는 유전자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유전자 조작으로 인간이 단맛 대신 쓴 맛을 좋아하게 하고, 안락과 기쁨 대신 고통과 슬픔을 좋아하게 만든다면 어떻게 되는가. 단맛.승리.성공.기쁨은 우리가 꼭 좋아해야 할 것이 아니다.

현재의 유전자 배치프로그램이 그렇게 설정돼 있을 뿐이다. 좋아해야 할 단맛, 싫어해야 할 슬픔이 고정적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금강경』은 "세상에 고정된 것은 하나도 없음을 확실하게 깨달음으로써 최고의 지혜에 도달할 수가 있다" 고 가르친다. 컴퓨터에서 큰 집과 작은 집, 강자와 약자는 프로그램이 만든 그림일 뿐이다. 승자와 패자가 있더라도 그 게임에서만 그렇다.

처음부터 게임을 다시 시작하거나 다른 종류의 게임을 하면 승패가 뒤바뀔 수가 있다. 지금 당장 계속 지더라도 무슨 상관인가. 언제고 승패는 교차할 수 있으므로 지금 승리했다고 해서 기뻐하거나 패배했다고 해서 기분 나빠 할 것이 없다.

젊고 건강해서 욕망의 불길이 성하면 그것에 시달려 괴롭고, 늙고 병들어서 욕망이 없으면 무력감으로 괴롭다. 이를 뒤집는 것이 지혜다. 욕망의 번뇌가 성할 때는 건강을 느껴서 좋고, 욕망이 끊어졌을 때는 도가 그 정도로 높아져서 좋다.

현실을 인터넷 게임으로 대체하고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여의치 않은 현실에 의해 시달림을 당한다면 컴퓨터 화면으로 바꿔 보아서라도 평상심으로 평화를 누리자는 것이다.

석지명 <법주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