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더, 영어보다 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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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밴쿠버 겨울올림픽의 기쁨이 드문드문 솟아난다. 쾌속 세대의 패기와 당당함에 대한민국 국민은 행복했다. 연이은 메달 소식은 강력 비타민이자 원기회복제였다. 특히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가 챔피언 자리에 오르는 모습은 보고 또 봐도 감동적이었다. 그는 기쁨을 주는 마법사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무대에서 ‘금메달 압박’을 받으며 얼음판에 선 그를 바라보자니 내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용감하고 담대했다. 심리적 압박과 부담을 털어내고 당당히 실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면서 끈끈한 동지애를 느낄 수 있었다. 나 또한 세계무대에서 활동하면서 나 자신을 국가대표라고 생각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스포츠와 예술은 닮은 점이 많다.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 끊임없는 노력과 도전, 그리고 뛰어난 성과는 곧 애국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하나 더하자면 스포츠와 예술은 그 자체가 세계의 언어이기에 한 분야의 챔피언 자리에 오르면 곧 글로벌 리더로서 주목받는다. 사실 ‘코리아’라는 이름을 전 세계인의 가슴속에 각인시키는 김연아 선수야말로 최고의 애국자이자, 글로벌 리더인 셈이다.

나는 요즘 글로벌 리더라는 단어를 깊이 생각해 본다. 글로벌 리더가 가져야 할 자질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후배들을 글로벌 리더로 키울 수 있을까. 김연아 선수의 경우라면 타고난 재능과 혹독한 훈련, 철저한 자기 관리를 성공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스무 살 나이에 세계무대를 두려워하지 않는 당당함, 만능 엔터테이너로서의 끼도 한몫했을 것이다. 나도 17세에 세계 무대에 서기까지 누구보다도 혹독한 연습과 훈련을 거쳤고, 많은 무대 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쌓았다. 때로는 두려움과 외로움을 느낄 때도 많았다. 하지만 최고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고 최고가 되리라고 다짐했다.

지난 1년간 ‘아트원 문화재단’의 국제 유치원 ‘아트원 소사이어티(A.O.S)’에서 글로벌 리더를 꿈꾸는 어린 후배들을 가르치고, 학부모들을 만났다. ‘글로벌 리더를 키우는 전인 교육기관’을 슬로건으로 내건 만큼 아트원 소사이어티의 학부모들은 글로벌 리더를 향한 꿈과 열정이 대단하다.

그런데 문제는 꿈꾸는 것과 실천하는 것이 다르다는 점이다. 세계 무대에서 최고의 브레인들과 경쟁할 인재를 키워내겠다는 우리의 교육은 ‘조기영어교육’과 ‘선행학습’에 얽매여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많은 학부모가 아이가 영어책을 줄줄 읽어 내려가고, 원어민 교사와 의사소통하는 것에 만족하고 그것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려면 영어는 중요한 의사소통 도구다. 원어민과 비슷한 발음을 구사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영어는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 없다. 우리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에게 “No Korean! Only English!”라고 말한다면, 그들이 배워야 할 모든 것을 유치원에서 배울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그들이 커서 대한민국을 가슴에 품고 세계를 호령할 수 있을까? 어쩌면 영어를 모국어로, 미국을 조국으로 갖고 싶은 아메리칸 드림만 가득 채워줄지도 모른다.

나는 미국 줄리아드음대 예비학교 시절에 최고가 되려 노래하고, 최고가 되려 영어를 공부했다. 김연아 선수 또한 토론토에서 피겨스케이팅을 연습하는 한편 틈틈이 영어를 공부해 서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당당한 모습을 과시했다.

글로벌 리더를 키우기 위해선 ‘조기 영어교육’이나 ‘선행학습’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 스스로 영어를 배우게 만드는 힘, 남들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지식과 지혜를 키우게 하는 힘. 그것은 바로 세계 최고가 되고 싶다는 ‘꿈’, 글로벌 리더가 되고 싶다는 ‘꿈’이다.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그 꿈을 북돋워주는 교육이 바로 우리의 교육이었으면 좋겠다.

임형주 팝페라 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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