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유해업소 단속… 휙 둘러보고 "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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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난 19일 오후 9시. 서울 모 구청 청소년유해업소 합동단속반 다섯명이 승합차로 관내 유흥가를 향해 떠났다. 구청과 지역 청소년보호단체 직원 두명씩, 그리고 경찰관 한명이다.

이날 밤 들른 곳은 호프집.소주방 20군데와 단란주점 다섯곳. 많게는 50~60명, 적게는 10여명의 손님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꽤 어려 보이는 청소년 몇몇이 눈에 띄었지만 단속반은 대충 둘러보곤 "미성년자 없지요" 라고 묻는 것으로 대부분 단속을 마쳤다. T호프집에서 만 19세에 한달 모자라는 소녀 한명을 적발, 업주의 자인서를 받은 게 실적의 전부였다.

단속반이 구청에 돌아온 시간은 오후 11시. 업소당 머무른 시간은 평균 1~2분 정도였다.

1999년 10월 인천 호프집 화재 참사 이후 서울시가 시작한 청소년들의 유흥업소 출입 단속.

'철저한 단속과 엄벌' 을 외치며 시작했으나 1년반이 지나면서 형식적 겉핥기로 변질되고 있다. 당연히 단속 실적은 곤두박질친다.

근무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계획에다 지방선거를 앞둔 민선 자치단체장의 선심, 단속 정보의 사전 유출 등도 가세해 단속을 약화시킨다.

본사 취재팀이 구청 세곳의 단속을 동행 취재한 결과 연 10억원 이상을 들이는 구청.경찰.시민단체 합동단속은 "예산만 낭비한다" 는 비판을 듣기에 충분했다.

대부분 규정된 여덟 시간의 단속시간(오후 7시~다음날 오전 3시)을 절반도 채우지 않았고, 인원도 규정(6~7명 한팀)에 미달했다.

◇ 겉도는 단속=유흥가가 밀집한 서울 강북지역 한 구청의 올해 3개월 단속 실적은 여섯건.

구청 관계자는 "다음날 정상출근 하려면 일찍 마칠 수밖에 없다" 며 "사실상 본격 영업이 시작되는 오후 11시쯤 단속을 끝내버리는 셈" 이라고 말했다.

합동단속을 해야 할 경찰들이 바쁜 업무를 이유로 불참하는 일도 잦아 차질을 빚는다. 이 관계자는 "경찰은 자체 훈련 등을 이유로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나온다" 며 "최근 '업무 때문에 한달간 단속에 참여하지 못한다' 는 공문까지 보내왔다" 고 말했다.

도봉구청 단속반 관계자는 "경찰관이 없으면 손님들이 주민등록증 제시를 요구해도 응하지 않는다" 며 "심지어 올초 업주들이 '네가 뭔데 단속이냐' 며 단속반을 폭행해 두명이 입원한 일도 있다" 고 했다.

이에 대해 관악구의 한 파출소 관계자는 "우리 일에도 손이 달려 구청 단속까지 나갈 여유가 없다" 고 말했다.

◇ 소극적인 민선 구청장들=강남구청 관계자는 "단속을 하기만 하면 업주들이 구청장 면담을 요청한다" 면서 "눈치가 보이는 게 사실" 이라고 했다. 그는 "지방선거를 1년 앞둔 시점이라 최근엔 이런 경향이 더 심하다" 고 덧붙였다.

◇ 단속 정보 유출도=서대문구의 한 시민단체는 "한밤에 어떤 비디오방이 중.고생을 입장시켜 영업 중이라는 제보를 받고 단속반에 이 사실을 알린 뒤 함께 나가보니 손님이 한 명도 없더라" 며 정보 유출 가능성을 의심했다.

도봉구 시민단체 관계자는 "일부 구청직원이나 경찰들이 '이 업소는 제외하자' 고 제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구청 단속반에 교육을 하고 있지만 일일이 감시할 수는 없는 일" 이라고 말했다.

전진배.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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