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얼마나 망극하십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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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인간은 여러 면에서 삶의 방식이 동물과 다르다. 그 중 결혼식과 장례식은 인간만이 갖고 있는 고유의 형식이다. 모든 동물에 있어서 짝짓기와 죽음이란 단지 개체의 일로서 끝난다.

그러나 인간만은 자식의 짝짓기를 부모가 돌봐주고 죽은 부모의 주검은 자식이 처리한다. 그래서 인간사에서 결혼식과 장례식은 생활 예법으로 사회화돼 있다.

우리의 모든 생활문화는 서양식이라는 신식문화가 전통문화를 구식으로 밀어젖히며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아직은 그 모두가 우리네 삶의 문화로 안정되게 뿌리내린 것은 아니다. 한달 전 친상을 당해 선친의 장례를 치르면서 나는 우리 사회의 새로운 장례문화를 체감할 수 있었다.

혐오시설로 취급돼 어둡고 후미진 곳에 있던 영안실이 근래에 와서는 호텔만큼 밝고 깨끗한 장례식장으로 바뀐 것은 장례문화의 반가운 혁신이다. 문상객의 편의를 위해 고인의 영정 앞에 국화꽃 한송이를 바치고 상주에게 고개 숙여 위로를 표하는 것도 이 시대의 형식이다.

그러나 문상객 중에는 그것만으로 조문의 뜻이 표현되지 않는 듯 전통적 방식으로 고인에게 재배를 올리고 또 상주에게 큰 절을 하는 분이 아직 많다. 그런데 지금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목장을 경영하고 있는 나의 외사촌 형님은 달랐다. 칠순을 바라보는 형님은 배움은 모자랐어도 삶의 예법만은 옛 법대로 지키는 아주 순박한 농부이시다.

부음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온 형님은 당신의 고모부 영정 앞에 서서는 한참 동안 주먹만한 눈물을 흘리시더니 절도 하지 않고 접객실로 나갔다. 그러자 형님의 고모되는 나의 어머니가 뒤쫓아가서 "얘야, 너는 무슨 종교를 믿길래 절도 안하냐, 기독교인들도 고개는 숙이더라" 라고 했다. 이에 형님은 놀라며 "아니 벌써 염을 잡수셨단 말입니까?

그런데 무슨 상주가 건도 쓰지 않고 완장만 두르고 있답니까?" 하고는 다시 빈소로 들어왔다. 본래 염하기 전은 살아 생전의 모습이므로 곡을 하지 않는 법이란다.

빈소에 들어온 형님은 넙죽 엎어져 "아이고, 아이고" 하며 곡을 했다. 그리고 한 3분쯤 지나서야 연극배우처럼 곡을 딱 그치더니 영정에 재배를 정중히 올리고 나서 상주인 내게 큰절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황급히 엎드려 형의 절에 응하는데 형님은 몸을 반쯤만 일으키고는 내게 얼굴을 가까이 대며 "얼마나 망극하십니까" 하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몰라 묵묵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삼우제를 지내고 나서 나는 시골로 형님께 전화를 드려 문상해 주심에 감사드리고는 이 예법을 물었다.

"형님, 문상 가서 상주에게 말할 때 얼마나 망극하십니까 말고 다른 말은 없나요?"

"그게 누구의 상이냐에 따라 다르지만, 당고(當故)당한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라고도 하지. 돌아가셨다는 말이 웬 말이냐는 뜻이야. "

"또 무슨 말이 있어요?"

"또?

우선 두 개만 알고 돌려가면서 써야지. "

"그러면 상주는 어떻게 응답해야 하나요?"

"상주는 제 말씀이 무슨 말씀이겠습니까라고 해야지. 저는 죄인이라 대답할 말이 없다는 뜻이야. 이 사람!

자네는 대학교수면서 그런 것도 모르나. "

"형님, 그거 쉽지 않네요. "

"아무렴, 예법이 쉬운 게 어디 있어. 자네 우리 건너마을 승전이 알지?"

"아, 그 까불이 아저씨요. "

"그래, 그 사람이 모친상을 당해서 장사를 치르는데 문상객에게 반드시 제 말씀이 무슨 말씀이겠습니까라고 대답하라고 단단히 일러주었지. 그런데 이 까불이가 대답한다는 것이 그만, 제가 무슨 말씀을 아뢰오리까라고 했다는 것이야. 그 사람이 텔레비전 연속사극을 좋아했거든. "

옛 장례법은 이처럼 끔찍스럽게 엄했다. 그러나 전통이란 본래 이어진다는 것 못지 않게 변한다는 특성도 있으니 옛 법이 오늘에 그대로 통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형님과 대화를 마치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의 장례문화는 신식으로 변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부분, 즉 무어라 위로하고 무어라 답해야 하는지는 아직 예법으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알았다.

유홍준 <영남대 교수.한국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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