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화 기행] 쌍봉사 철감선사부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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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서구 석조 유물들의 세밀한 조각이 우리 것보다 훌륭해 보인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서구의 석재들이 대부분 대리석이나 석회석으로, 석질이 물러 조각이 쉽다는 점을 아셔야 합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의 화강석 등은 석질이 무척 강하여 세밀한 조각이 어렵습니다.

이렇게 단단한 돌덩어리를 떡 주무르듯 다듬어 놓은 최고의 석조물이 바로 철감(澈鑑)선사부도입니다. 신라 경문왕(868년)때 제작된 높이 2.3m의 이 부도는 구례 연곡사 동부도와 더불어 우리나라 최고의 부도로 손꼽히는데 연곡사 동부도가 홀쭉한 몸체로 여성적인 데 비해 완벽한 비례로 장중하며 남성적입니다.

하대석에는 두 마리의 용이 구름 속에서 여의주를 희롱하고 있고, 8면의 안상에 다양한 모습의 사자를 양각하였으며 상대석 위 몸돌 굄대에 각종 악기를 연주하는 가릉빈가를 조각해 놓았습니다.

배흘림 기둥을 세운 몸돌에선 공양비천상의 천의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상륜부가 없어진 지붕돌에는 서까래와 부연까지 설치되었는데, 손톱 만한 막새기와에 새겨진 여덟 개의 연꽃잎을 보노라면 존경심이 우러납니다.

못된 도굴꾼들이 사리장치를 훔치려고 국보 제57호인 이 부도를 쓰러뜨릴 때 깨어져 나간 지붕돌을 보면 가슴이 쓰려옵니다.

글.그림=김영택(펜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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