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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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
진은영 지음, 그린비, 296쪽, 1만2900원

철학자 이마뉴엘 칸트(1724∼1804)는 지극히 단조로운 삶을 살았다. 인구 5만의 소도시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나 평생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결혼도 하지 않았고 자식도 없었다. 너무나 규칙적이어서 그가 매일 오후 산책에 나서면 동네 사람들이 시계를 맞췄다는 이야기도 유명하다.

철학도이자 시인인 저자는 칸트의 이런 외양이 아닌 내면을 좇는다. 중세와 근대가 교차하는 지극히 위험한 시대에 태어나 인간 이성의 한계와 그 가능성을 두고 치열하게 고민했던 이 위대한 철학자를 문학적 감수성으로 그리고 있다. 예컨대 단조로운 외양 속에 감춰진 그의 기쁨과 슬픔, 학문적 열정을 묘사하기 위해 일찍이 시인 릴케가 로댕에게 쓴 헌사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

“(그의 산책은 종종) 자기 내면으로의 침잠, 자신에게 닥쳐오는 어마어마한 과제로의 침잠을 위한 하나의 구실에 불과했을 것이다. ”

“그에게 말을 건 것은 일뿐이었다. 일은 아침에 깨어날 때 말을 걸었고, 저녁에는 연주를 마치고 내려놓은 악기처럼(그의 산책 속에서) 여음을 울렸다.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그렇게 다 자란 상태로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정복될 수 없었다.”

‘도덕법칙’과 함께 ‘별이 빛나는 하늘’을 평생 숭배해왔다고 고백한 합리적 낭만주의자의 풍모가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대목이다.

이어 저자는 칸트가 살았던 시대와 그에게 영향을 줬던 사람들을 쫓아가고, 『순수이성비판』의 개념을 따라가고, 후대 철학자들의 비판과 해석을 소개한다.

칸트 철학은 유물론을 제외한 후대의 거의 모든 철학 유파와 맥이 닿는다. 철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어차피 한번은 거쳐야할 산맥인 셈이다. 굳이 철학사상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의 학문적 엄밀성과 기존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학자로서의 자세는 한번쯤 되새겨볼 만하다. 그렇다면 저자를 따라 마치 칸트와 ‘연애’하듯 즐겨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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