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수도권 박탈·소외감 "폭발 직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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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역 갈등 구도가 바뀌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지방경제가 더 주저앉으면서 수도권과 비수도권간의 격차가 한계 수준을 넘어섰다. 이에 따라 동서간 지역 감정보다 수도권 대 비수도권의 갈등이 전면으로 등장하는 양상이다.

이대로 가다간 수도권은 만성 비만에 시달리고, 비수도권은 영양 실조에 걸려 국가가 건강한 발전을 할 수 없을 것이란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이에 중앙일보는 전국 현지 취재를 통해 지방의 총체적 어려움을 5회에 걸쳐 다루고, 이어 지역권별로 회생 방안을 모색하는 장기 시리즈를 싣는다.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지방 문제가 최대 이슈로 떠오를 것이다. " 윤덕홍 대구대 총장의 말이다.

그는 "이미 지방대학 교수들을 중심으로 지방 분권을 이슈화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고, 여기에 시민단체도 가세했다" 며 "이같은 시민운동이 거세지면 중앙정부가 곤경에 빠질 수 있으므로 하루빨리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고 말했다.

지방의 민심 이반이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중앙정부에 대한 '지방의 반란' 이 고개를 들고 있는 셈이다.

지난달 28일 서울 남대문로에 있는 대한상공회의소에서는 영.호남 시.도지사 협력회의 주최로 '국토 균형 발전을 위한 심포지엄' 이 열렸다. 겉으로는 심포지엄이었지만 사실은 중앙정부에 대한 시위나 다름없었다.

지방에서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 봤자 귀 기울이는 사람이 없자 지방 핵심 인사들이 서울까지 원정에 나선 것이다.

그런 만큼 분위기도 비장했다. 임정덕(부산대 교수.경제학)부산발전연구원장은 "이제는 호소와 건의는 소용이 없고, 지방 유권자들이 주권 행사를 통해 중앙에 집중된 권한을 실력으로 빼앗아 와야 한다" 고 주장했다.

외환 위기를 겪으며 그동안 지방 경제를 떠받쳐온 건설.유통업의 두 축이 붕괴하자 지방에선 먹고 살 길이 막막해졌다. 여기다 금융 구조조정 과정에서 지방 금융기관들이 집중적으로 퇴출당해 지방에선 돈 구경하기가 힘들어졌다.

이 때문에 남한 면적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이 ▶은행 예금.대출의 65%▶대기업 본사의 88%▶공공기관의 84%▶대학 연구기관의 61% 등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 홀 현상' 이 극심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중앙정부는 수도권 집중을 억제해온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쪽으로 가고 있어 지방의 반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재정 불균형도 심각하다. 전국 2백48개 기초단체 중 지난해 빚이 전혀 없는 곳은 21개였는데, 이 가운데 서울의 구(區)가 16개를 차지했다.

반면 예산의 15% 이상을 지방채를 갚는 데 쓴 곳은 부산.대구.광주시와 경상북도, 충남 서천군, 경북 군위군 등 여섯개로 모두 비수도권 지역이다.

특별취재팀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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