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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북한 경제의 중국 예속 우려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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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렇게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나진항 진출에 중국 동북 3성의 사활이 걸려 있다. 동북 3성은 에너지 자원의 보고이자 중요 생산기지다. 석탄 발전으로 변경지역 북한에까지 전력을 공급하고 있기도 하다. 현재 중국 정부는 이 지역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 고속도로와 철도로 연결, 새로운 경제거점으로 성장시킨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동북지역진흥계획’(2007년)을 보면 중국의 동북지역을 관통해 하얼빈(哈爾濱)과 다롄(大連)을 연결하는 ‘하-다 철도’가 있다. 2012년 완공 목표인 다롄-투먼(圖們) 간 ‘동변도철도’도 동북지역 개발의 또 다른 청사진이다. 여기에다 창춘(長春)-옌지(延吉)-투먼을 연결하는 ‘창지투 개발선도구’(2009년 확정)는 획기적인 경제 핵심지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문제는 무서운 속도로 커지는 이 지역 역량을 어떻게 발휘해 나갈 수 있느냐다. 동북 3성엔 동쪽 바다로 나가는 항만이 없다. 한반도 서쪽에 있는 단둥(丹東)과 다롄을 거쳐 한국과 일본 및 태평양 등지로 가려면 엄청난 거리와 시간이 든다. 게다가 이들 항구는 현재의 물동량도 제대로 소화해낼 수 없을 만큼 포화상태다. 그래서 동쪽을 뚫어야 한다.

최근 열렸던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를 계기로 알려진 나진항 제1호 사용권의 10년 연장은 중국의 북한에 대한 이해관계를 그대로 표출한 것이다. ‘육로-항만-구역 일체화’가 북한에 대한 중국의 기본시각이다. 여기에는 중국의 훈춘(琿春)-취안허(圈河)와 북한의 원정-나진항을 잇는 도로를 현대화하고, 나진항의 사용권 및 개발권을 확보해 항만 배후부지를 개발하는 계획이 담겨 있다. 앞으로 중국 경제의 ‘쓰나미’가 나진항을 통해 일본과 태평양으로 몰려갈 것이다. 북한도 이에 맞장구를 쳐주고 있다. 북한은 오래전부터 나진·선봉항을 국제화물중개지, 수출가공기지, 관광과 금융기지의 경제특구로 발전시킬 것을 염원해 왔다. 그러나 주변국가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와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 등 환경 조성의 미비로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런데 북한이 다른 움직임을 내보이려 하고 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중국 등과의 대외 협력을 통한 개방밖에는 길이 없다는 것을 인식한 듯하다. 이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나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건강할 때 후계구도를 확립하고, 인민생활도 안정시켜 놓아야 한다. 김일성 탄생 100주년이 되는 2012년까지는 스스로 약속한 ‘강성대국의 문’을 열어야 한다. 나진항을 중국이나 러시아를 통해 개발하고, 중계무역기지로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북한이 나진·선봉을 포함, 8개 지역을 ‘특별시’로 지정한 것은 이런 의도의 표출일 것이다.

한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 중국과 러시아의 경제발전을 위해 나진항이 통째로 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을 것인가. 한국이 배제된 상태에서 중국이 주도하는 북한 개발은 남북한 경제 통합을 위한 개발과는 크게 상치될 것이 뻔하다. 중요 물류거점의 상실은 잠재적 경제이익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심한 북한을 더욱 중국에 예속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지금이라도 속초-자루비노-니가타를 잇고 있는 환동해 뱃길을 나진으로도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원정-나진의 도로를 넓히는 등 현대화하는 데 한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모색해봐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영향력을 최대로 확보해야 한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통해 유럽으로 연결되는 나진-하산의 철길을 열기 위해 러시아와의 논의도 재개해야 한다. 핵 문제는 핵 문제대로, 경제 문제는 경제 문제로 냉철하게 푸는 지혜가 필요하다. ‘돌아와요 부산항’이 아닌 ‘돌아와요 나진항’을 부르고 싶다.

김영윤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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