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고시 부활을 보며] 개혁 흠집낸 밀어붙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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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신문고시는 당초 계획보다 두달 미뤄진 오는 7월부터 시행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정부는 내용을 상당부분 수정해 신문고시 부활이라는 목적을 이뤘지만 신문업계의 자율고시를 우선하도록 해 신문업계의 반발을 무마했다. 정부와 신문업계가 한발씩 양보해 서로 체면을 살린 셈이다.

그러나 통과는 됐지만 신문고시를 부활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보여준 '밀어붙이기' 나 '준비되지 않은 신문고시안' 은 언론개혁의 정당성을 해쳤다.

또 주도자인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의 공정성과 정책입안 능력을 의심케 했다. 정부가 제시한 논리와 자료는 언론의 자산인 신뢰도를 해쳤다. 모두가 피해자인 셈이다.

언론은 '의식 산업' 이다. 국민 의식을 좌우하는 동시에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의식 산업인 언론의 중요성은 여론형성 기능에 있다.

여기서 여론의 기초단위인 의견의 가치는 물량이 아니라 품질에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다시 말해 많은 의견이 아니라 좋은 의견, 즉 정론(正論)이 가치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언론자유를 보장하는 근본정신은 정론을 유통시켜 사회발전, 나아가 국가경쟁력 제고에 기여토록 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르몽드,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여론을 독과점한다고 사회적 논쟁을 벌이지는 않는다. 유력지 하나라도 다양한 시각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문은 수출상품이자 국제여론을 주도한다. 신문의 숫자가 여론의 다양성과 정론을 보장한다는 물증은 어디에도 없다.

신문의 여론독과점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의제가 되고 있지만 여론을 형성하는 데 신문과 방송의 몫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여론 독과점 문제를 다룰 때 신문의 여론 독과점, 방송의 여론 독과점으로 나눠 따질 수는 없다.

그렇다면 신문고시가 목표로 하고 있는 독과점 방지는 여론 형성에 있어 절반의 역할을 맡고 있는 신문만의 규제, 반쪽 규제인 셈이다.

중요한 것은 매체별 규제가 아니다. 정부의 언론정책은 독과점 규제가 아니라 사회발전을 위해 정론을 제시하는 경쟁력 있는 신문이 출현하는 것을 도와야 한다.

한국에 뉴욕타임스 같은 신문만 있다면 경품을 주지 않고 강매하지 않아도 누구나 구독료를 내고 보려는 것이 독자의 수준이다. 이런 국민을 위해서라도 신문사는 좋은 신문을 만들어야 하고, 정부는 이를 돕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정부가 기존 법대로 하면 그만이지 이번 신문고시안처럼 신문을 규제하려고 나서는 것은 곤란하다. 따라서 신문고시보다 신문업계의 자율고시를 우선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새로 고시를 만들어 언론을 규제하려는 것은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울 수 있다.

이번 신문고시안이 독과점 규제를 목적으로 했으면서도 독과점을 오히려 조장하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신문고시라는 준비되지 않은 규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많은 상처를 입었다. 당초 계획했던 내용은 상당부분 수정된 채 이해 당사자의 신뢰도만 훼손하고 부활한 신문고시 파문에 대해 누군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허행랑 <세종대 교수 매체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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